노지현 사회부 기자
1심 재판부는 책에서 문제 된 35곳 중 30곳은 의견 개진에 불과하며 나머지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 책은 ‘새로운 사료를 제시하거나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발굴해 소개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알려진 사료와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해석한 학술적 성격의 대중서’라고 결론지었다.
매춘이란 단어가 책에 들어갔느냐 아니냐가 소송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의 ‘불편한’ 대목은 후반부에 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용감한 고백 이후 국제사회에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공론화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이들 할머니를 보살펴 온 ‘나눔의 집’에 의도치 않은 ‘칼날’을 겨누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일부 시민단체가 추산하는 위안부 수는 일제의 만행을 강조하기 위해 부풀려졌다는 점, 일본 정부가 과거 여러 차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시민단체는 부정한다는 점, 그리고 일각에서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한 점 등이다.
녹취록을 보면, 1996년부터 나눔의 집에서 살았던 배춘희 할머니(2014년 6월 작고)는 시민단체에 대해 여러 차례 불만을 제기했다. “정부 지원금이나 민간인 기부금을 받아서 왜 건물이나 기념관 짓는 데 몰두하나” “일본에 20억 원씩 달라고 주장하는 어떤 할머니 주장에 (찬성한다고) 왜 내 이름을 써 넣었나”라며 비판적이었다. 위안부 소녀상을 전국 곳곳에 설치하는 것에 대해서도 배 할머니는 명확히 반대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언론에 소개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배 할머니가 별세하고 1주일 뒤 시민단체를 주축으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이 시작됐다.
언제부터인지 일본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는 게 금기시되는 분위기다. 친일파라는 말이 여전히 두렵다. 그렇다 보니 종종 모순에 부딪힌다. 한일 정부가 합의해 만든 화해·치유재단의 사과와 배상금 성격의 1억 원을 위안부 할머니 46명 중 34명이 받아들였다. 이들을 돈에 눈이 멀었다고, 가족이 억지로 받게 했다고 폄훼해야 할까. 그렇다면 그것은 야만의 또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