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통계청이 ‘2016년 출생·사망 통계’를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출생아 수가 4만6300명으로 1년 전(43만8400명)보다 더 줄어 통계 작성 1970년 이후 가장 적은 수를 기록하는 등 저출산이 가속화됐단 내용입니다.
그날 오전 11시경, 보건복지부 대변인실로부터 저출산 대책에 관한 메일을 보냈다는 문자가 도착합니다. 기자들은 오전에 기사 쓸 일이 있는지 보고하고, 점심 먹은 뒤 오후에 또 한 번 오전 중 일어난 일을 갈무리해 보고합니다. 저출산 해결 주무부서인 복지부이기에, 오후에 통계청 발표에 붙여 뭔가 보고할 내용이 있겠다 싶어 메일을 열었습니다.
첨부한 한글파일을 열었습니다. 한 장짜리 보도자료에 굵은 글씨가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 번 세어봤습니다.
보도자료를 메모장에 붙인 다음 다시 한글문서로 옮겨 띄어쓰기를 모두 없애고 글자수를 확인합니다. 괄호와 숫자 포함 총 ‘361자’. 이제 굵은 글씨로 쓴 글자만 새 문서로 옮겨 다시 글자수를 확인해봅니다. 총 ‘204자’라 나오네요. 보도자료 56.5% 굵은 글씨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굵은 글씨가 어떤 내용인지 확인해볼까요. ‘…초저출산 추세 반전, 비상한 각오,…보다 강력히 추진,…양육친화적, 전사회적 총력대응,…국민의견수렴, 근본적 개선,…집중적, 점검 보완,…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대책,…차질 없이 추진.’
팀장이 SNS 단체방에 “(보도자료가) 어떤 내용이냐”고 묻자 후배기자가 이렇게 보고하더군요. “‘국민의견수렴’ 결과에 바탕해 ‘비상한 각오’와 ‘전사회적 총력대응’으로 저출산 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내용입니다.”
10년간 저출산 대책으로 80조 원을 쏟아 붓고 역대 최저 출생아수란 성적표를 받아든 복지부도 오죽 답답했을까요. 보도자료 한 장짜리를 내며 절반 이상을 ‘굵은 수사(修辭)’로 애면글면 채워야 했을 대변인실 직원들을 생각하니 우리 저출산 대책의 현주소가 보이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아니면 대놓고 다같이 웃자고 보낸 것일까요? 이도 저도 안 되는데, 에라 다같이 ‘비상한 각오’로 ‘강력히’ 웃고 넘어가시자고요.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