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신경작용제 VX에 당해”… 말레이 경찰이 검출됐다고 밝힌 VX는
영화 ‘더 록’에서 생화학무기 VX를 다루는 장면. 영화 ‘더 록’ 캡처
“태어나서는 안 될 물건입니다.”
1996년 인기를 끈 영화 ‘더 록’에서 주인공(니컬러스 케이지)이 수십만 명을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테러용 생화학무기를 두려운 듯 쳐다보며 던진 대사다. 이 생화학무기가 바로 24일 말레이시아 경찰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숨지게 했다고 발표한 신경작용제 ‘VX’다. VX의 정식 화학 명칭은 에틸 S-2-디이소프로필아미노에틸 메틸포스포노티올레이트. 인(P)을 함유한 유기화합물로 된 살충제다. 실온에서는 무색무취한 액체 상태로 존재하지만 온도를 높이면 기체 상태로 변한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김정남 암살에 VX가 사용됐다고 밝힘에 따라 살해 방법과 걸린 시간 등 정황에 비춰 볼 때 북한의 화학무기 기술이 대단히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극물은 그 강도가 △주사로 혈관에 투입 △폐로 흡수 △입으로 복용 △피부로 흡수 순으로 신체에 전달된다. 하지만 VX는 유기인 탓에 몸속에 들어가면 다른 물질과 반응해 금세 분해된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쉽게 발견하지 못한 이유다.
영화 ‘더 록’에서 생화학무기 VX를 다루는 장면. 영화 ‘더 록’ 캡처
전문가들은 VX를 이용한 김정남 암살 과정을 통해 해독제를 가진 ‘제3의 인물’이 있을 가능성은 물론이고 북한의 높은 화학무기 기술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분석한다. 맨손으로 김정남을 공격한 두 여성 용의자는 구토 등 경미한 증상만 일으켰을 뿐 멀쩡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장을 지낸 정희선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은 “VX가 묻은 손만 닦아내선 위험하다. 범행 주변 누군가로부터 아트로핀, 옥심 등 해독제를 지원받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손에 섞이면 VX로 변하는 물질을 바른 후 김정남에게 접근하는 동시에 두 물질을 섞어 사용하는 식으로 암살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VX를 구성하는 유기인은 화학 구조 상 다른 물질을 결합하는 부위가 4곳이 있다. 이곳에 산소가 붙으면 유익한 물질이 되지만 황(S)이 결합하면 VX 등 독성물질이 된다.
홍세용 순천향대 천안병원 교수는 “VX 화학탄의 경우 발사 후 투하 지점에 다다랐을 때 두 물질이 섞여 화학반응이 일어나도록 장치가 돼 있다”며 “서로 섞이면 VX 가스가 되는 물질을 양손에 바르거나, 두 여성이 각각 따로 바른 후 김정남에게는 섞어서 암살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환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암살 직전 두 물질을 섞었다면 해독제가 따로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김윤종 zozo@donga.com·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