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4주년]朴대통령의 사람들, 지금은…
2016년 12월 23일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인명진 갈릴리교회 원로목사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당초 발표 시간은 오전 9시 반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허원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난감한 듯 정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 수석은 “왜 하필 오전 9시 반이냐. 박근혜 대통령이 오전 10시쯤 나와 당장 보고할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 원내대표는 “북한이 쳐들어와도 오전 10시까지 기다릴 거냐”며 불쾌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불통과 단절’의 청와대는 최순실 씨 국정 농단 사건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참모들에게조차 곁을 주지 않고, 참모들은 박 대통령과의 수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고립된 청와대는 점점 국민에게서 멀어져 갔다.
‘왕실장’ ‘기춘대원군’으로 불릴 만큼 국정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부터 박 대통령은 ‘섬김의 대상’이었다. 고 김영한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남긴 업무수첩에는 김 전 실장의 이런 지시가 담겨 있다. ‘대통령 보고 간략히 하도록, 편하게 해드리고…’
이 사건으로 현 정부의 ‘신데렐라’로 꼽힌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영어(囹圄)의 신세가 됐다. 박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맞은 2015년 2월 25일 청와대 직원들에게서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전 직원이 직접 쓴 ‘롤링페이퍼’였다. 박 대통령은 “이런 건 처음 받아본다”며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이 아이디어는 당시 정무수석비서관이던 조 전 장관이 냈다. 하지만 이런 살가움이 국민에겐 전해지지 않았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 참모들이 직언보다 ‘심기 경호’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돌쇠’라 불릴 정도로 성실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의 몰락에서도 이런 아쉬움이 남는다. 대통령 순방 때는 입안이 헐 정도로 업무 강도가 높았던 안 전 수석은 2016년 4월 멕시코 방문 당시에도 박 대통령 지시로 미르재단 관계자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박 대통령의 ‘전방위 지시’를 늘 순종적으로 이행한 것이다. 전 청와대 행정관은 최근 “안 전 수석이 미르재단 사무실까지 직접 챙겨 보라고 해 의아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하기도 했다. 안 전 수석의 업무 스타일이 그대로 배어 있는 ‘꼼꼼한 업무수첩’은 국정 농단 사건을 규명하는 핵심 열쇠가 됐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현 정부의 ‘핵심 실세’로는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빼놓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사정 정국을 조성할 수 있었던 데는 업무 장악력이 뛰어났던 우 전 수석의 역할이 컸다. 특검은 우 전 수석에게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22일 기각됐다. 청와대 핵심 인사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구치소행을 피했다. 하지만 지력과 재력, 권력까지 움켜쥔 그는 ‘법꾸라지’라는 주홍글씨를 새길 운명에 놓였다.
최순실 씨가 ‘비선 실세’였다면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은 ‘공식 실세’로 통했다. 박근혜 정부 첫해 집권여당 원내대표에 이어 2014년 6월 경제부총리로 발탁돼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도했다. 이를 ‘박근혜노믹스’가 아닌 ‘초이노믹스’라고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인명진 위원장 체제에서 그는 ‘당 분열의 원인 제공자’로 낙인찍혀 당원권 정지 3년 징계를 받았다. 다음 달 2일에는 자신의 지역 사무실 인턴을 중소기업진흥공단에 특혜 채용시켰다는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불려나가야 할 처지다.
이재명 egija@donga.com·신진우·송찬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