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권 10년, 위기 부른 10장면
보수정당 사상 이런 적은 없었다. ‘5월 초 대선’이 가시권에 들어왔지만 확실한 대선 주자조차 안 보인다. 2007년 대선에서 530만 표라는 기록적 차이로 여당 후보를 눌렀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보수라고 하면 ‘꼴통’ 소리 들을까 ‘샤이(Shy) 보수’란 말도 생겼다.
보수 정치의 몰락. 비단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탓일까.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당시 이미 지역주의 극복, 지방분권, 복지 등에 대한 요구가 분출했는데도 이명박(MB)·박근혜 정권은 시대적 요구를 국가적 어젠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면서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만 지키려는 정치세력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진단했다.
2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영국 보수당의 힘은 ‘보수(補修)’에서 나왔다. 민중의 분노가 혁명으로 폭발하기 전 선제적으로 수용한 게 보수(保守)의 생존 비결이었던 셈이다.
[1]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의 ‘질긴 대결’
2007년 8월 20일,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본선보다 뜨거웠던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의 후유증이 보수 정당사 10년을 얼룩지게 할 줄이야. 친이-친박 프레임은 지난 10년간 여당 의원들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규정했다. 양 계파는 세종시 수정안 등 쟁점 앞에서 놀랍도록 ‘쫙’ 갈라섰다. 18, 19대 총선 공천에선 서로 ‘복수혈전’을 벌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된 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사람을 쓸지언정 MB 곁에 있던 사람은 멀리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보수가 계파 이익에 혈안이 돼 국민은 안중에 없었다”고 말했다.
“세금 쪼매만 늦게 내도 서민들에게는 뻘건 글씨로 된 독촉장이 날라와 쌌는데, 기껏 (의원) 맨드러v더니 종합부동산세 없애뿌리는 데 앞장서? 그기 보수가!”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2008년 한 지역민의 호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첫해 벼르듯 과세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종부세 개편안을 내놓았다. 종부세는 노무현 정부가 서울의 ‘강남 부자’를 겨냥해 만든 징벌적 세금으로 논란이 컸다. 하지만 이 감세 정책의 혜택은 소수에게만 돌아갔다. 이후 서민의 마음을 어루만질 변변한 정책도 내놓지 못하며 보수는 ‘기득권 옹호’와 동의어로 각인됐다.
[3] 무상급식 주민투표, 그 이후
[4] MB 목 밑까지 올라간 측근 비리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던가. 2012년 7월 MB의 친형이자 ‘만사형통(萬事兄通)’으로 불린 이상득 전 의원이 저축은행 비리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구속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에 이어 MB 정부 ‘실세 3인방’이 일거에 무너진 셈이다. 바른정당 김용태 의원은 “‘이상득 사태’는 MB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날리며 레임덕을 가속화했다”고 말했다.
[5] 불통의 서곡 된 ‘밀봉 인사’
2012년 18대 대선 직후인 12월 27일. 당시 박근혜 당선인 측 윤창중 대변인은 셀로판테이프로 밀봉된 서류봉투를 열고 첫 인선안을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참패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밀봉 인사’의 기원이자 ‘불통 리더십’의 서곡이었다.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통과 은둔”이라며 “이런 폐쇄적 리더십이 국정 운영 시스템을 취약하게 만든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6] ‘증세 없는 복지’ 실패로 금 간 신뢰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무상보육, 기초연금, 고교 무상교육 등의 공약을 쏟아냈다. 집권 5년간 135조 원의 재원이 필요한 대규모 사업들이었다. 그러나 박 후보는 일찌감치 ‘증세(增稅)는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집권 첫해 정부는 연말정산제도 개선으로 ‘꼼수 증세’ 논란에 휩싸였다. 담뱃값 인상도 사실상 ‘우회 증세’였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보수가 덜컥 얄팍한 민심만 좇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졌다”면서 “신뢰에 금이 가면서 사건이 원래 그 사건의 의미 이상으로 커졌다”고 분석했다.
[7] IMF 때도 없던 ‘3년 연속 2% 저성장’
2007년 12월 보수정권 탄생의 동인(動因)은 경제였다. 국민들은 ‘보수가 경제만은 제대로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보수가 금과옥조로 여겨온 경제 성적표는 초라했다. 산업 각 분야는 중국에 덜미를 잡혔다. 지난해 실업자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1960년대 경제개발 이후 처음으로 올해 ‘3년 연속 2%대 침체’가 예상된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MB 정부 때는 4대강 사업에 올인(다걸기)하며 해야 할 일을 못 했고, 박근혜 정부는 한 게 없다”며 “경제에서도 무능하면 보수는 설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8] 통진당 해산의 명암
박 대통령의 최대 우군은 아이러니하게도 통합진보당이었다. 2014년 12월 ‘정윤회 동향’ 문건 사태 등으로 박 대통령의 40%대 ‘콘크리트 지지율’은 깨졌다. 그런 그를 살린 게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었다. 보수층은 정권을 중심으로 다시 결집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악어와 악어새의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말도 나왔다. 보수는 통진당 해산에 환호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자기 혁신엔 소홀했고 경직된 이념 경쟁에 몰두하다 급기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까지 이어졌다.
[9] 집권 세력의 오만, 20대 총선 공천 막장극
18, 19대 총선 공천이 복수를 주제로 한 ‘서부극’이었다면 2016년 20대 총선 공천은 난데없이 주인공이 죽는 ‘막장 드라마’였다.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 이후 ‘유승민 밀어내기’로 점철된 공천이었다. 김용태 의원은 “영남 패권만 믿고 그렇게 공천해도 이길 수 있고, 레임덕은 없다는 오만방자함뿐이었다”며 “보수정치의 자해였다”고 말했다. 그러고도 새누리당은 지난해 8·9전당대회에서 친박을 새 지도부로 전면에 내세웠다.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는 세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10] ‘폭발한 적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이보다 더한 ‘적폐 백화점’이 또 있을까. 비선 실세(국정 운영의 무능), 측근의 사익 추구(부정부패), 재벌과의 검은 거래(기득권 옹호), 변명으로 일관하는 박 대통령(거짓말), 불투명한 정책 결정과 집행(불통), 홍위병 역할을 하는 친박(책임의식 결여)….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보수 지지층이 보기에도 용인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며 박근혜 정권이 급격히 무너진 것”이라며 “최순실 사태는 보수정권 10년사에서 부정적 의미의 ‘화룡점정’이다”라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