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영 경제부 차장
직장인이라면 누군들 칼퇴 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한국에는 여전히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인의 근로 시간은 거의 선두(2위)를 달리면서도 생산성은 하위권(22위)에 그친다는 사실은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드물게 칼퇴가 잘 지켜지는 IBK기업은행도 칼퇴를 정착시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이곳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으로 인력이 줄어들어 매월 마감 때면 야근이 잦아지자 2000년대 초반부터 정시 퇴근 캠페인을 벌였다. 본점에선 퇴근 시간이 되면 노조가 확성기를 들고 ‘퇴근하라’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PC를 꺼버리기 전 오후 9시를 넘겼던 평균 퇴근 시간은 지난해 오후 6시 42분으로 당겨졌다. 이렇듯 퇴근 시간을 당기는 건 정부가 급조한 대책으로 기업을 계도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당위를 주장하는 건 쉽지만 실행은 또 다른 문제다. 직원들을 제때 퇴근시키겠다는 강한 의지와 평가 등 이를 현실로 만들 체계적인 제도가 없다면 이뤄지기 어렵다. 구성원 간에 ‘결과 지향적인(result-oriented) 문화’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더욱이 이번 대책이 내수 활성화를 위한 것이라면 정부의 문제 진단이 잘못됐다. 어렵사리 직원들을 일찍 퇴근시킨다 한들 그 대상은 대기업이나 공기업 직원처럼 일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고용이 안정됐고 급여 수준도 높은 편이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정작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쓸 돈이 없는 게 현실이다. 1월 실업자가 100만9000명이나 되고, 일자리를 구해도 비정규직이라면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53.5%·2016년)에 그친다. 또 설령 직업이 있어도 가계 빚더미에 시달려 돈 쓸 여유가 없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해 가계부채는 1344조 원에 이른다.
이번 대책을 두고 ‘공무원들이 회사 생활을 알기나 하는 것이냐’부터 ‘쓸 돈도 없는데 놀면서 돈 쓰라는 말이냐’는 비난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진짜 문제를 간파하지 못한 칼퇴 정책은 ‘로망’으로 남고, 정부의 내수 활성화 대책은 또다시 헛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김유영 경제부 차장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