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의 두 광장, 구호-주장 살펴보니
자극적인 단어 쏟아진 ‘두 광장’ 25일 서울광장에 모인 제14차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전국집중 17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 집회 참가자들이 ‘특검 연장’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탄핵 인용을 촉구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백남기를 죽이고 한상균을 가둔 자, 이제 너희들이 죽을 것이고 너희들이 갇힐 것이다.”(최종진 전국민노총연맹 위원장 직무대행)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인 25일 태극기와 촛불로 가득 찬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의 긴장감은 지난해 탄핵 정국이 시작된 이래 어느 때보다 높았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와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비상행동)은 10여 일 앞둔 헌법재판소 심판이 최후의 결전이라도 되는 듯 자극적인 단어를 쏟아 내며 맞섰다. 올해 최대 규모라는 양측의 주말 집회 4시간의 발언을 동아일보가 분석했다.
연사 상당수는 이번 사태를 좌우 대결로 구분 지어 우파의 결집을 강조했다. “좌파의 선동으로 공산화 직전에 처했다” “반동 세력을 모조리 척결해야 한다”는 등 태극기 집회의 정당성을 70차례나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대한민국’, ‘애국’을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큰 소리로 호응했다.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국회와 특검을 비방하는 내용도 다수였다. 바른정당 김무성, 유승민 의원을 탄핵의 주범이라고 지칭하며 이들을 대한민국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특검 구속, 탄핵 무효, 국회 해산” 같은 구호를 거듭 외쳤다.
박 대통령 변호인단 조원룡 변호사는 “축구 경기 할 때 심판이 편파 판정을 해도 경기에는 승복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헌재 재판관들이 사람들이 다 아는 기본도 안 지키면서 (선고에 승복하라는 게) 말이나 되냐”고 주장했다.
촛불 집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말은 역설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 ‘박통’, ‘박근혜’ 등으로 표현되면서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주장이 102차례나 나왔다. “종신형 박근혜 감옥행 급행열차 태우자”, “불꽃길 걷게 만들자” “살인 정권 박 정권” 등 강도 높은 발언들도 이어졌다. 태극기 집회와 마찬가지로 상대 진영을 비난하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말도 57차례 이어졌다. 양측 모두 자신들이 민심을 대변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특검 연장’ 취지의 주장도 세 번째로 많은 29번 나왔다. 태극기 집회에서 특검에 대한 비방 등이 39차례 나온 것과 대비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부역자’라고 힐난하는 구호도 나왔다.
이날 서울 태극기 집회가 벌어지던 현장 근처에서 박근혜 정권을 반대하는 유인물을 나눠주던 양모 씨(68)가 폭행을 당하는 등 양측이 충돌했다. 충북 청주에서는 보수 성향 시민단체 주최 집회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며 태극기를 불태운 혐의(국기모독죄)로 A 씨(21)가 경찰에 붙잡혔다.
전문가들은 헌재의 탄핵 심판 결정이 임박해 사회적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며 양측 모두의 자제와 헌재 결정에 대한 수용을 촉구했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부터는 사회 지도자들이 집회 참석을 자제하고 헌재 결정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광복 직후와 같은 큰 혼란에 맞닥뜨릴 위험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