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 현장을 가다]北주민 20여명 대사관 들어가 주말마다 열리는 ‘자아비판’ 강화 말레이, 공항서 대대적 방역작업… ‘VX 암살’ 北에 강력 경고 보내
자국민 단속 나선 北… 2시간 동안 대사관에 불러모아 25일 오후 3시경(현지 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북한대사관 안으로 북한 외교관과 주민들이 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약 2시간 뒤 대사관에서 나왔다. 북한 당국이 김정남 독살 뒤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에 대한 내부 단속을 강화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쿠알라룸푸르=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박훈상 기자
“오후 9시 기준 발견하질 못했다.”(말레이시아 현지 기자)
“(김정남 피살 용의자인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의 사진을 올리며) 우리의 취재 목표(target)다.”(미국 기자)
경찰 수사로 북한대사관의 조직적 개입 정황이 확인된 후 각국 취재진 수십 명이 24시간 북한대사관 앞을 생중계하듯 감시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온라인 메신저를 이용해 취재 정보를 공유한다. 이 미국 기자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현광성과 김욱일은) 분명 말레이시아 안에 있다. 우리는 전략적인 협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치 용의자를 잡으러 나선 형사의 모습이었다.
○ ‘범죄자 소굴’로 낙인찍힌 북한대사관
현지 매체가 북한이 김정남 암살에 사용한 맹독성 신경 독가스 ‘VX’를 북한대사관이 외교행낭을 통해 들여왔을 가능성에 대해 보도한 이후 북한대사관은 ‘범죄자의 소굴’로 낙인찍힌 분위기였다. 26일 오후에도 북한대사관 앞은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기자들로 북적였다. 취재진은 해수욕장 파라솔과 의자, 돗자리를 구해와 자리를 잡고 두 눈과 카메라 렌즈를 북한대사관에 고정했다.
사진기자들은 ‘채증’하듯 사진을 찍었다. 25일 오후 3시경 북한 주민 20여 명이 북한대사관으로 들어갔다. 매주 주말이면 대사관 직원 가족이 의무적으로 참가하는 ‘생활 총화’(한 주간 생활을 비판하고 계획하는 일)가 열린다고 한다. 현지 기자들은 가방과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는 북한 주민을 한 명도 빠짐없이 사진에 담았다. 혹시 용의자가 섞여 있지 않나 그 자리에서 사진을 확대해 얼굴을 확인하기도 했다. 주민 20여 명은 2시간가량 대사관 안에 머물렀다. 대사관은 24시간 커튼을 치고 있어 내부 상황을 밖에서 짐작할 수 없었다. 이날 총화의 강도가 여느 때보다 강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북한 소행이 분명한 증거를 내놓고 있지만 북한대사관이 “경찰 발표는 모두 거짓말, 중상비방이다. 이는 모두 남한의 공작”이라고 일관하자 외국 기자들은 “북한의 대응에 이성이나 합리성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지 신문 기자는 “북한이 외교관 면책특권을 노려 대사관을 앞세워 범행을 저지른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며 “우리와 외교를 맺은 국가라면 ‘용의자들이 다른 알리바이가 있기 때문에 혐의가 없다’는 식으로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 해명하는 것이 우리를 존중하는 외교관의 자세”라고 비판했다. 택시 운전사 발라 씨는 “이복형을 죽일 정도로 ‘악마(evil)’ 같은 김정은을 향한 분노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우리도 시신을 북한이 가로채 갈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 VX 청소, 말레이시아 정부도 여론전
VX 공포… 말레이, 김정남 암살 13일 만에 공항 제독 작업 26일(현지 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말레이시아 경찰이 독극물 감식팀과 소방 당국 관계자 등 80여 명을 동원해 공항 출국장 등 김정남 암살 현장을 비롯해 그가 움직인 동선을 따라 신경작용제 VX 수색 및 제독 작업을 펼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쿠알라룸푸르=박훈상 기자·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