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국제부장
관광 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공무나 유학 등을 제외한 관광객은 273만 명으로 전년보다 60만 명(18%) 감소했다. 차이 총통이 취임한 5월 이후만 비교하면 전년보다 무려 33%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무역도 역시 감소했다. 지난해 1∼10월 양안 무역은 955억3000만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7% 줄었다. 2014년 1339억9000만 달러(+5.1%), 2015년 1186억8000만 달러(―11.4%)로 2년 연속 감소한 것이다. 수출이 593억6000만 달러(―3.8%), 수입이 361억7000만 달러(―3.4%)였다.
서울 명동과 남대문시장, 청계광장, 종로5가 광장시장 먹거리 골목을 가득 채우다시피 하는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이 어느 날부터 30% 줄어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지난해 의존도가 25%인 대중국 수출이 한중 관계 악화로 기약없이 줄어든다면 기업들이 어떤 비명을 질러 댈까? 이런 생각을 하면 대만 기업과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상상할 수 있다.
최근 만난 한 대만인은 “지난해 1월 총선에서 차이 총통이 승리한 뒤 예상했던 일”이라며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전임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친중(親中) 노선을 비판해 온 차이 총통은 중국이 양안 관계의 기본으로 여기는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대만의 중국 종속을 우려하던 20, 30대, 이른바 ‘딸기 세대’의 표심을 얻은 것이다.
선거 후 줄어드는 양안 경제 관계는 대만 젊은이들의 정치적 선택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경제적 비용인 셈이다. 그나마 최근 대만 상황이 상상한 것 같은 아수라장이 아닌 것은 차이 총통이 취임사에서 제시한 ‘신남향 정책’이 서서히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대만인들의 설명이다. 농업, 비즈니스, 문화, 교육, 무역, 관광 분야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 및 남아시아 6개국 등과의 협력 관계를 확대해 경제 전반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 8월 16일 차이 총통이 주재한 대외경제 무역 전략회담에서 정식 통과됐다.
실제로 지난해 전체 외국인 관광객은 2.4% 늘어난 1069만 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나타냈다. 중국인 관광객은 줄었지만 비자 간소화 조치 등을 통해 동남아시아 관광객을 대거 유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대만을 방문한 동남아시아 관광객은 11만9560명으로 지난해 1월 9만3209명보다 28.27% 늘었다. 한국인 관광객도 11만2078명(화교 225명 포함)으로 지난해 1월의 8만5640명보다 30.87% 증가했다.
대만에서도 나이 많은 국민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차이 총통의 새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도 많다. 어차피 중국에 인접한 대만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 경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데 공연한 짓을 해 베이징의 매를 사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권이 바뀌면 다시 친중 정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의식한 듯 차이 정부 관계자들은 “신남향 정책은 중국 시장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리광장 대만 주미연락소 부대표는 “중국이라는 1개의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기 위한 ‘경제의 재균형’으로 양안 간 경제 교류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한반도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되면 한국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보복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를 이유로 사드를 배치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날로 증가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건 동맹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건 사드 배치가 불가피하다면 중국의 보복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중 의존도를 미리 미리 줄여야 한다는 것이 대만인들의 충고다.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