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가 최종 무산된 이유는 조사 과정을 녹음·녹화하는 데 대한 의견 차이 때문이었던 것으로 27일 드러났다. 특검 수사기한 연장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승인 거부와 정치권의 합의 불발로 무산된 이날 특검과 박 대통령 측은 대면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놓고 날 선 공방을 벌였다.
○ 특검-청와대, 필담만 주고받다 대면조사 무산
특검은 이달 9일로 예정됐던 박 대통령 대면조사가 조사 일정 사전 유출을 이유로 무산된 이후 “박 대통령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되, 전 과정을 녹음·녹화하자”고 박 대통령 측에 제안했다. 이규철 특검보는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대면조사 중) 돌발 상황을 예방하고 조사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녹음·녹화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특검은 박 대통령 측이 녹음·녹화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조사가 끝난 뒤 녹음·녹화 파일을 봉인해 양측이 합의할 때만 개봉하자”는 제안까지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은 끝내 이를 거부했다.
특검이 녹음·녹화를 조건으로 내건 것은 박 대통령 측이 조사가 끝난 뒤 강압수사 논란 등을 제기할까 우려한 탓이다. 이처럼 서로에 대한 불신이 깊었던 까닭에 양측은 대면조사 날짜, 방식 협의조차 인적 채널을 통한 대화가 아닌 공문으로 진행했다. 서로 얼굴도 마주하지 않은 채 ‘필담’만 주고받다 끝난 셈이다.
○ 탄핵 결과와 ‘대선’이 변수
검찰과 특검은 박 대통령의 헌법상 불소추 특권 때문에 대면조사를 강제하지 못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3월 초로 예상되는 박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리면 사정은 달라진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즉시 불소추 특권도 사라지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더 이상 검찰 수사에 불응할 수 없게 된다.
현직 대통령 지위를 상실하면 조사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특검은 앞서 9일 박 대통령과 대면조사를 하기로 합의했을 때, 박 대통령 측 요구로 청와대 경내에서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했다. 또 조사 참여 인원을 한 명으로 제한하는 데도 동의할 정도로 박 대통령 측의 심기를 살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뀌면, 검찰은 박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사에 불러 포토라인에 세울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9년 4월 대검찰청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다만 탄핵이 인용되면 차기 대선을 60일 이내에 치러야 한다는 점이 변수다. 검찰로서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대선 정국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검찰 수뇌부에서는 벌써부터 탄핵이 인용될 경우 박 대통령 수사 시점을 대선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장관석 jks@donga.com·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