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정치부장
며칠 전 이 영화를 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박정희 정권 시절 최악의 사법살인으로 기록되는 ‘2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을 떠올린 모양이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를 만난 그는 “재심을 해서 무죄가 되고, 그렇게 문제가 해결돼 손해배상도 받겠지만 이게 돈으로 보상되는 게 아니지 않으냐”고 위로했다. ‘정치적 사형’ 위기에 내몰린 박 대통령으로선 작금의 상황이 대(代)를 거쳐 반복되는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전율을 느끼게 하는 운명의 장난으로 여겨질 듯도 하다. 박 대통령은 단 한 번의 헌재 심판으로 정치의 단두대에 오를 수밖에 없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8인 또는 7인 재판관이 (심리를 넘어) 평의·선고까지 하면 재심 사유다. 헌재 구성을 게을리 해 재심 사유에 해당하는 사태가 되면 이 재판에 관여한 법조인은 모두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27일 탄핵심판 최후변론에선 탄핵안을 일괄 표결한 국회의 의결 절차 잘못을 들어 인용도 기각도 아닌 각하 결정을 역설한 변호인도 있었다.
탄핵심판 진행 과정 자체가 순탄치 않아서인지 쫙 갈라진 광장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마치 탄핵이 인용되면, 또는 기각되면 어느 쪽이든 무시무시한 짓을 저지를 것 같은 기세다. 헌재 결정은 그 자체가 상황 종료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승복을 언급하면 무슨 큰 정치적 결단이나 양보를 하는 것처럼 비치게 된 후진적 상황을 선진국에선 어떤 눈으로 지켜보고 있을지 걱정이다. 헌재의 결정은 보호받아야 하지만 절차상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점에선 책임에서 자유롭다 할 수 없다.
이제 탄핵열차는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탄핵열차엔 박 대통령 혼자 올라탄 게 아니다. 대한민국이, 국민 모두가 함께 탄 열차다. 마침내 탄핵열차가 3월 어느 날 목적지에 도착해 멈춰 서면 우리 앞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굳이 끝까지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길도 있다.
이미 지난 일 같긴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탄핵 결정이 나오기 전 박 대통령이 “더 이상의 국론 분열은 원치 않고 탄핵이 설사 기각된다 해도 통치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무조건 하야’ 선언 같은 정치적 해법을 내놓길 바랐던 건 그 때문이었다.
끝내 촛불 에너지와 태극기 에너지가 부딪쳐 국내외 안보 경제적으로 엄중한 시기에 내전(內戰)으로 치닫는 걸까. 양쪽의 합리적 세력을 중심으로 엄청난 국가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몇 달을 끌어온 탄핵정국, 그저 대권 다툼의 전주곡으로 끝나서야 되겠는가. 종착역이 다가올수록 탄핵열차에서 내리기가 점점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