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러, ‘화가 어머니의 초상’.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기지도 않았고, 위대한 가문의 일원도 아니었던 여인은 어떻게 이름까지 세상에 전하게 되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살아남은 자식은 단 2명이었지만 여인은 무려 18명 자녀를 출산했다지요. 그중 한 명이 북유럽 미술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였어요.
일찍이 천재성을 인정받은 아들의 삶은 어머니와 달랐습니다. 치열한 과학 탐구와 풍부한 인문 지식에 바탕을 둔 섬세한 미술로 주목을 받았지요. 신성 로마 황제는 독일 뉘른베르크까지 화가를 찾아와 초상화를 부탁했고, 이탈리아 베네치아 여행 중에는 그곳 시민이 돼 달라는 간청도 있었어요.
화가는 초상화 제작 당시 조급했어요. 어머니 죽음은 예견된 상태였거든요. 서둘러 목탄 작업을 완성했지만, 어머니 삶의 외피 너머 실체를 정확하게 충분히 포착해 내었군요. 그것도 당대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가 칭송했던 위대한 ‘검정 선’ 몇 개로 말이지요.
‘알브레히트 뒤러의 63세 된 어머니이다.’ 화가는 단시간에 완성한 초상화 상단에 문장을 덧붙였습니다. ‘어머니는 1514년 5월 16일 해지기 두어 시간 전쯤 사망했다.’ 초상화 완성 두 달 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림에 설명도 추가했어요. 자신의 명성과 예술로 사랑하는 어머니 존재를 세상에 알리려 했던 거지요.
초상화에서 푹 꺼진 양 볼과 뚝 튀어나온 광대뼈가 제일 먼저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가장 마지막 시선은 힘껏 부릅뜬 눈과 꽉 다문 입술에 머뭅니다. 자신의 운명과 마주한 어머니는 병약할지언정 나약하지 않습니다. 감당하기 버거운 문제를 똑바로 응시 중인 어머니 눈빛과 태도에서 책임감 있는 인간의 강인함을 발견합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