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커지는 강경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도 김정남 피살 관련 조사에 나설 뜻을 밝혔다.
미 정부 관계자는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북핵 6자회담 한미일 수석대표 협의에서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검토에 들어갔다”고 말했다고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미국이 2008년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후 정례적으로 재지정 여부를 검토해 왔지만 이번에는 김정남 피살 사건 때문에 검토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치명적인 신경작용제인 VX를 사용해 김정남을 암살한 정황이 드러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날 한미일 수석대표 협의에는 김홍균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조지프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참석했다.
미국은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을 계기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2008년 북한이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고 ‘핵 검증’에 합의하면서 명단에서 해제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정치적 상징성이 큰 테러지원국 재지정 카드를 통해 북핵 위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특히 중국의 적극적인 대북 제재 이행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화당 소속 데빈 누니스 하원 정보위원장은 27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은 ‘완전히 고삐 풀린(completely unhinged)’ 정권으로 협상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26일 CBS방송 인터뷰에서 “김정남 암살 사건은 모든 정황이 북한의 소행임을 가리키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안보리는 27일 비공개 회의를 열고 북한이 유엔 제재를 피하려 “무책임하고 도발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만장일치로 규탄했다. 이날 회의는 최근 북한이 정교하고 교묘한 수법으로 유엔 제재를 피하고 있다는 유엔 전문가 패널 보고서가 공개된 뒤 개최됐다.
OPCW도 이날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전문가 파견과 기술 협조를 통해 말레이시아 조사에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 더스타는 28일 말레이시아 경찰이 VX 증거를 유엔과 공유할 의시가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매슈 라이크로프트 유엔 주재 영국대사는 이날 “말레이시아가 VX 관련 증거를 안보리 및 OPCW에 보내 달라”고 밝혔다. 영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안보리 차원에서 북한의 VX 사용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