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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도 못그리면 문제 있죠” “애국심 없다고 하는건 지나쳐”

입력 | 2017-03-01 03:00:00

[1일 3·1절 98주년/ON AIR 편집국]국민 10명 중 8명 태극기 제대로 못 그린다는데…





‘태극기를 제대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은 10명에 2명 꼴.’

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편집국 편집회의에 이 같은 요지의 기사 계획안이 올라왔다. 주요 내용은 이러했다.



최근 사회부 취재팀이 서울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광화문광장, 대학가 등에 모인 초중고교생, 20대 이상 성인들에게 “태극기를 그려 달라”고 요청했다. 종이를 받아든 시민 33명 가운데 4명이 태극기를 완벽히 그렸다. 나머지 29명은 태극 문양의 파랑과 빨강의 위치를 반대로 그리는가 하면,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 4괘를 제멋대로 그리기 일쑤였다.

역사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시민 815명 중 태극기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은 27%였다. 서 교수는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그릴 줄 아느냐’고 물으면 당황하면서 그리는 걸 시도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사회부장이 “국민 대다수가 태극기를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33명 가운데 4명이라니, 12%에 불과하다. 그나마 2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든 수치. 회의에 참석한 부장들이 모두 놀라면서 기사 취지에 공감했다.

그런데 잠시 후, “태극기를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로 지적받아야 할 사안인가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곧바로 다양한 의견이 이어졌다. “사실 우리 태극기가 다른 나라 국기에 비해 그리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현실적으로 너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다소 무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부장이 이에 답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태극기인데,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는 건 그래도 문제가 아닐까요?”

곧이어 “그럼 우리도 지금 이 자리에서 직접 그려 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한 부장이 펜을 들어 태극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가운데에 둥근 태극을 그리고 주변으로 4괘를 그려 나갔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몇몇 부장의 입에서 “괘가 잘못됐는데”라는 말이 나왔다. 건곤감리 4괘 위치가 뒤바뀐 것이다.

“거 봐요. 태극기 그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니까….”

“4괘는 3·4·5·6 순서만 익혀두면 그릴 수 있을 텐데.”

“아니, 그렇지 않아요. 여러 번 외워도 그 원리가 체화되지 않으면 자꾸 까먹는다니까요.”

사실, 건곤감리 4괘의 위치나 괘의 크기와 비율 등을 기준에 맞춰 정확하게 그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얘기는 학교 교육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나요?”

“선생님 재량에 따라 가르칠 수는 있지만 정규 교과과정에는 없다고 하네요. 간혹 미술시간에 한두 번 그려 보거나 운동회 때 응원 도구로 쓰려고 그려 보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교본이나 인터넷을 찾으면 태극기 그리는 법이 다 나오는데, 그것을 꼭 암기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지, 그런 생각도 듭니다.”

“자기 이름의 한자가 복잡하고 어렵다고 해서 그것을 못 쓴다는 건 문제가 아닌가요?”

태극기를 정확하게 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비난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태극기 그리는 것을 애국심의 척도로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렇죠. 애국심이 강해도 태극기를 정확하게 그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동의합니다. 그래도 서 교수의 말대로 국기에 대한 무관심은 방치할 수 없는 문제죠. 국기를 정확하게 그리는 것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푸르구나, 우리땅 독도 3·1절 98주년을 하루 앞둔 28일 갑판을 대형 태극기로 덮은 해경교육원 3011경비함정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해양소년단원 등 70여 명이 독도를 배경으로 만세를 부르고 있다. 이들은 해경교육원이 주관한 ‘해양영토순례’의 하나로 독도를 찾았다. 독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편집회의는 태극기를 대하는 자세의 문제로 이어졌다.

“태극기를 잘 게양하고 잘 관리하며 예의를 갖추는 것도 우리가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거 같습니다.”

“옛날 어른들은 국경일이면 빠짐없이 태극기를 게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특히 단독주택이 줄어들고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태극기 게양을 자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태극기가 다소 엄숙한 경향이 있으니 좀 더 태극기에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분위기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

“그렇습니다. 좀 더 편안하게 생활 속에서 태극기를 늘 접하고 직접 그려 볼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태극기 그리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취재=김단비 기자
정리=이광표 오피니언팀장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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