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3·1절 98주년/ON AIR 편집국]국민 10명 중 8명 태극기 제대로 못 그린다는데…
‘태극기를 제대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은 10명에 2명 꼴.’
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편집국 편집회의에 이 같은 요지의 기사 계획안이 올라왔다. 주요 내용은 이러했다.
역사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시민 815명 중 태극기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은 27%였다. 서 교수는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그릴 줄 아느냐’고 물으면 당황하면서 그리는 걸 시도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잠시 후, “태극기를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로 지적받아야 할 사안인가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곧바로 다양한 의견이 이어졌다. “사실 우리 태극기가 다른 나라 국기에 비해 그리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현실적으로 너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다소 무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곧이어 “그럼 우리도 지금 이 자리에서 직접 그려 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한 부장이 펜을 들어 태극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가운데에 둥근 태극을 그리고 주변으로 4괘를 그려 나갔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몇몇 부장의 입에서 “괘가 잘못됐는데”라는 말이 나왔다. 건곤감리 4괘 위치가 뒤바뀐 것이다.
“거 봐요. 태극기 그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니까….”
“4괘는 3·4·5·6 순서만 익혀두면 그릴 수 있을 텐데.”
“아니, 그렇지 않아요. 여러 번 외워도 그 원리가 체화되지 않으면 자꾸 까먹는다니까요.”
“그런데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나요?”
“선생님 재량에 따라 가르칠 수는 있지만 정규 교과과정에는 없다고 하네요. 간혹 미술시간에 한두 번 그려 보거나 운동회 때 응원 도구로 쓰려고 그려 보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교본이나 인터넷을 찾으면 태극기 그리는 법이 다 나오는데, 그것을 꼭 암기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지, 그런 생각도 듭니다.”
“자기 이름의 한자가 복잡하고 어렵다고 해서 그것을 못 쓴다는 건 문제가 아닌가요?”
태극기를 정확하게 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비난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태극기 그리는 것을 애국심의 척도로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렇죠. 애국심이 강해도 태극기를 정확하게 그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동의합니다. 그래도 서 교수의 말대로 국기에 대한 무관심은 방치할 수 없는 문제죠. 국기를 정확하게 그리는 것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푸르구나, 우리땅 독도 3·1절 98주년을 하루 앞둔 28일 갑판을 대형 태극기로 덮은 해경교육원 3011경비함정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해양소년단원 등 70여 명이 독도를 배경으로 만세를 부르고 있다. 이들은 해경교육원이 주관한 ‘해양영토순례’의 하나로 독도를 찾았다. 독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태극기를 잘 게양하고 잘 관리하며 예의를 갖추는 것도 우리가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거 같습니다.”
“옛날 어른들은 국경일이면 빠짐없이 태극기를 게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특히 단독주택이 줄어들고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태극기 게양을 자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태극기가 다소 엄숙한 경향이 있으니 좀 더 태극기에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분위기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
“그렇습니다. 좀 더 편안하게 생활 속에서 태극기를 늘 접하고 직접 그려 볼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태극기 그리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취재=김단비 기자
정리=이광표 오피니언팀장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