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균 정치부 차장
칼럼이 보도된 날 기자는 문 전 대표 측의 핵심 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항의를 하기 위해 연락했다”고 운을 뗀 그는 “명단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에 국민성장은 7차례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재벌 개혁, 일자리 창출 방안, 외교 전략 등 문 전 대표의 정책 청사진을 제시하는 굵직굵직한 공약이 담겼다. 국민성장에 참여한 전문가도 10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국민성장 회원의 날’ 행사엔 400여 명의 교수, 전문가 등 국민성장 참여자가 얼굴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명단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언론에 이름을 밝히기를 원치 않는 이들이 많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전문가들이 그간 쌓아온 학식과 경험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고 이를 국정에 실제 관철하려는 의지를 탓할 순 없다. 좁은 학계에서 “어느 교수가 어떤 후보에게 줄 섰다” “학자가 정치권을 기웃거린다”는 등 이런저런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게 싫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유력 대선 주자의 자문그룹이 내놓는 정책은 해당 후보가 당선되면 바로 국가의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참여한 인사 가운데 일부는 청와대 참모나 장관, 차관 등으로 국가 운영에 직접 참여하게 될 것이다. 검증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출범시킨 국가미래연구원은 발기인 78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 적지 않은 인사들이 대통령 인수위원회를 거쳐 박근혜 정부에서 중책을 맡았다.
가뜩이나 대선 때면 ‘폴리페서’(politics와 professor가 합쳐진 조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대선 주자들의 자문그룹 명단 비공개 방침은 국민에게는 “후환이 없도록 비밀을 지켜줄 테니 마음 편하게 줄 서라”는 말로밖에 안 들린다. 정말 신원 공개를 원치 않는 역량 있는 ‘전문가’를 모으는 게 목적이라면 각 대선 주자는 500명이니 700명이니 하는 ‘세(勢) 과시’부터 하지 않아야 한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