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논설위원
문재인, 개미마을 가봤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놓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에서 비중이 가장 높은 일자리가 바로 사회복지 분야(25만 개)다. 일자리는 기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 하지만 복지전달 체계가 미흡한 현실을 감안하면 “나라를 망하게 하자는 것이냐”는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의 비판은 너무 나갔다. 관건은 문재인표 정책의 현실성이다.
주민센터 새내기들은 공공의 관리를 받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사회적 인식이 ‘생애주기형 복지’의 걸림돌인 만큼 복지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어젠다를 던졌다. 일자리 숫자에 빠진 대선주자보다 분석적이고 어른스럽다. 공공 일자리의 양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숫자 박사’ 말고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냐는 말이다.
2월 6일 서울 노량진 고시학원을 찾은 문 전 대표에게 한 수험생이 “공무원 합격 후 부처를 선택할 때 부처 격차가 심해서 고민이라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보느냐”고 질문했다. “아휴, 배부른 고민하시는 것 아니에요?” 청년은 일자리의 질을 이야기하는데 대선주자는 김칫국부터 마시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공무원은 무조건 양질의 일자리라는 말인지, 고용의 질을 따질 때가 아니라는 말인지 모르겠다.
시장경제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명확한 선은 ‘국가의 크기’다. 국가 개입 영역을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로 제한하고 복지 지출을 줄이는 작은 정부가 보수의 지향점이라면 진보는 국가의 힘으로 복지 지출을 늘리고 약자를 적극 돕는 큰 정부를 지향한다.
대선주자의 일자리정책을 맨 왼쪽의 ‘가장 진보’부터 맨 오른쪽의 ‘가장 보수’까지 죽 펼치면 이재명 문재인 안철수 안희정 유승민 순서의 띠그래프가 된다. 일자리정책은 이념적으로 무색무취해 보이지만 속을 파보면 상대방과 타협하지 않는 진영 논리가 숨어 있다. 박정희 정권의 의료보험제도는 진보의 논리를 보수가 받아들인 국내 사례이고 독일 사민당의 하르츠 개혁은 보수의 경제성장 논리를 진보가 흡수한 해외 사례다. 지금 대선주자에게 이런 포용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문 전 대표는 “정의의 출발은 분노” “대개혁은 적폐에 대한 뜨거운 분노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가슴이 아닌 머리까지 뜨거워진 지도자에게 일자리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3·1절 이후 대선주자들은 광장만이 아니라 개미마을에도 가보기 바란다. 현장의 말단 공무원만도 못한 현실 인식으로는 복지든, 일자리든 모든 공약이 구름 위에 떠 있을 수밖에 없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