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균 논설실장
탄핵 찬성해도 ‘태극기’ 참가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강남 아파트에 사는 노부부는 자식에게 이민을 종용하고 있다. 자신들은 살 만치 살았지만, 손자손녀들은 어떻게 될지도 모를 불안한 대한민국에 살게 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쯤 되면 ‘文포비아(phobia·공포증)’ 또는 ‘공문증(恐文症)’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쯤 되면 문 전 대표가 직접 나서 불안감을 감싸줄 만도 하지만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친일독재 사이비보수 세력 청산’이나 ‘대청소’를 들먹이며 불안을 부추긴다. 민주당 내에선 그가 “친노가 문제지, 문재인은 괜찮다”는 평가를 듣던 지난 대선 때와 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1500만 표에 가까운 득표의 기억이 패권의식을 너무 키웠다는 관측이다.
이런 불안감의 반사이익은 안희정 충남지사가 챙긴다. 안 지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한 의지’ 발언으로 집토끼들로부터 뭇매를 맞은 뒤 다시 기수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래도 갈 곳 없는 보수는 안희정의 ‘선한 의지’를 믿고 싶어 한다. ‘노무현의 적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런 발언을 했다면 진보 진영에선 벌써 매장됐을 것이다.
뿌리가 같은 문재인과 안희정은 어느 지점에서 다른 길을 걷게 됐을까. 노무현 정권 내내 대통령 곁을 지켰던 문재인은 노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토로한 ‘실패와 좌절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리라고 나는 본다. 그 실패는 노무현 정부 잘못이 아니라 ‘친일독재보수 세력’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억울해할 것이다. 반면 안희정은 대선자금 문제로 옥고를 치르는 등 노 정권 때 권력 주변에 가보지 못했다. 정권 핵심에서 한발 떨어져 나름대로 신산(辛酸)을 겪으며 새로운 길이 보였을 수 있다.
불안감 없애지 못한다면…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