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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의 프리킥]정치와 법치 그리고 미디어

입력 | 2017-03-03 03:00:00


허문명 논설위원

지인이 이혼소송 중이다. 이혼소송은 가끔 배우자에 대한 형사소송과 함께 진행되곤 한다. 지인도 남편을 형사 고소했다. 남편이 수시로 폭언, 폭행했던 결혼생활을 낱낱이 경찰조서에 썼다. 남편은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받았고 자식들도 증인진술을 했다. 대화와 타협에 실패하자 결국 법대로 한 것이다. 협의이혼하면 남남으로 끝날 수 있지만 소송하면 대개 원수가 된다. 상대방 헐뜯기에 혈안이 된 지인 가족의 인간성 파괴 과정을 지켜보면서 법은 역시 최후 수단이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분열은 예견돼 있었다

가정이 작은 공동체라면 국가는 큰 공동체다. 국가 운영을 위해서는 법과 제도 같은 정교한 장치와 운영원리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일본 패망 이후 미군정 체제하에서 외부로부터 들어왔다. 서구와 달리 아래로부터의 시민혁명 없이 하향적으로 이식(移植)되면서 현실과 제도상의 많은 괴리가 있어 왔다.

박정희 체제하에선 형식은 자유민주주의였지만 내용은 개발독재였고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에도 정권교체가 계속되었지만 실질적 자유민주주의는 정립되지 못했다. 정당정치와 의회민주주의가 국민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지탄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사태도 거시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와 경제의 압축성장 역사가 낳은 부작용이자 후유증이다.

흔히 정치와 법치를 동일선상에 놓고 말하지만 중심과 핵심은 정치다. 정치가 법을 따라야 하는 것도 맞지만 법은 정치권력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만든다. 대통령과 국회는 국민이 정치를 잘하라고 권력을 위임해준 핵심 권력기관이다.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태를 국회가 정치로 해결하지 못하고 헌법재판소에 떠맡겨 버렸을 때부터 반탄(탄핵 반대) 찬탄(탄핵 찬성) 분열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정치와 법치는 직접적 물리적 이기적 무질서와 갈등 대립을 막기 위해 제도화된 것이다. 군중집회는 제도를 보완하는 데 머물러야지 민의를 관철하는 전가의 보도가 되어선 안 된다. 좋은 약도 오래 먹으면 후유증이 생긴다. 군중집회의 일상화는 대한민국 공동체 입장에서 더 이상 양약이 아니다.

정치와 법치의 부패와 오작동을 감시하는 게 미디어의 역할이다. 정치 법치와 함께 자유민주주의 운영의 3대 축이라고 본다. 세간에서 미디어가 국정 혼란과 국민갈등 증폭이라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뼈아프게 성찰하고 있다.

말없는 다수가 이끌 것

헌재 결정 이후 대한민국의 미래는 괜찮을까 걱정들이 많다. 결과가 어떻든 헌재 결과를 둘러싼 승복과 불복, 정계개편과 선거연합, 대선 주자들의 부침 등 격랑이 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촛불, 태극기, 정치, 법, 미디어 모두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엔 진정 중요한 게 있다. 위기의 대한민국을 지키며 자신의 본분과 역할을 다하고 있는 침묵하는 다수 국민들이다.

소득과 소비가 날로 악화되는 중에도 2월 수출 증가율이 5년 만에 20% 깜짝 늘고 주가도 게걸음이긴 하지만 2,000 선을 지키고 있다. 삿포로 아시아경기에서 일본에 이어 종합 2위를 한 젊은이들의 선전은 또 어떤가. 건전한 생각을 가진 건강한 생활인들과 묵묵히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향후 정국에서 지혜로운 선택을 주도할 거라 믿는다. 그분들 앞에서 우리 모두는 더 겸허해지고 경건해져야 하지 않을까.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