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덕 산업부 차장
기아차 최대주주는 현대자동차로 지분은 33.88%다. 특수관계인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1.74%까지 포함하면 35.62%다. 예전 같으면 A사 연합군의 공세는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상법이 개정되면서 기업들은 감사위원을 다른 등기이사들과 분리 선출해야 한다. 감사위원 선출 때 대주주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A사와 연합군 의결권(17.03%)이 대주주 의결권(3%)보다 훨씬 많으니 표 대결에서 유리하다.
감사위원이 된 B 씨는 기아차의 모든 경영활동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다. B 씨가 넘겨준 정보를 근거로 A사와 연합군은 기아차 광주공장의 해외 이전을 요구했다. 해외 공장에 비해 높은 임금구조와 낮은 생산성이 이유였다. 기아차는 결국 국내 생산물량을 대거 유럽과 북미 지역으로 옮긴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구조조정 뉴스가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깜짝 놀랐다면 뒤늦게나마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이건 가짜 뉴스다.
야권이 추진하던 상법 개정안은 지난달 일단 통과되지 못했다. 지분 공시를 한 A사는 없다. B 씨의 감사위원 선임, 광주공장 생산물량의 해외 이전도 사실이 아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국내 기업들이 해외 헤지펀드들의 ‘울프팩(늑대 떼) 전술’에 희생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러 헤지펀드가 5% 이하 지분을 보유하며 공시의무를 회피하고 있다가 별안간 공동 전선을 구축해 기업을 공격하는 전술이다. 그는 “처음에는 늑대가 한 마리인 줄 알았다가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수십 또는 수백 마리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게 된다. 상법 개정안이 국내 기업들을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고 했다.
한경연은 지난달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이 도입되면 국내 10대 기업 중 절반 정도가 해외 헤지펀드 측 인사의 이사회 진입을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분석했다.
해외 거대 펀드들은 자본시장에서의 전투 경험이 국내 기업들보다 월등히 많다. 해외에서는 자본 대 기업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주주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포이즌 필’ ‘차등의결권’ 같은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장치도 함께 도입했다. 국내에는 없는 제도들이다.
눈앞에 밀어닥친 적을 보고서야 부실한 성곽을 보수한다면 이미 때는 늦었다. 하물며 그 성곽마저 없애 공격을 망설이던 적에게 ‘초청장’을 보낸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은 악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