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섀도 캐비닛’ 공개하자]1876년 시작된 영국의 섀도 캐비닛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운데)가 지난해 9월 영국 하원 회의실에서 제1야당 노동당의 섀도 캐비닛(오른쪽 앞줄)을 마주보고 브렉시트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맞은편에는 정부 각료에 대응해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와 그의 예비 내각이 앉아 있다. 영국 선데이익스프레스 홈페이지
내각제와 양당제를 택한 영국에서 1876년 시작돼 1907년 보수당의 체임벌린이 명명한 예비 내각, 이른바 ‘섀도 캐비닛’은 제1야당의 전유물이다. 미리 부처 장관을 내정해 현 장관을 견제하며 집권 후를 대비하는 것으로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도다.
그러다 보니 각 부처 장관과 노동당의 예비 장관은 앙숙이다. 튀는 소신 발언으로 유명한 더벅머리 괴짜 보리스 존슨 외교장관의 천적은 2010년부터 4번째 예비 장관을 맡고 있는 노동당의 여성 에밀리 손베리 예비 외교장관이다.
예비 내각 제도는 19세기 국왕이 내각 인사권에 개입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의회가 자체적으로 내각을 미리 구성하면서 시작됐다. 1960년대부터 집권당이 내부 갈등으로 과반수가 붕괴되거나 정권 교체가 될 경우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정착됐다.
예비 내각에서 국정 운영 수업을 받은 예비 장관들은 정권 교체와 함께 진짜 내각에서 실력을 발휘한다. 캠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나 행정 경험이 없는 외부 학자나 시민단체도 대거 장관직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대목이다.

예비 내각 제도는 정당과 정권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기능도 가진다. 캐머런 정권을 이어받은 메이 정부는 예비 내각부터 실제 내각까지 10년 넘게 캐머런과 함께 일한 필립 해먼드를 재무장관에, 리엄 폭스 전 국방장관을 국제통상장관에 임명했다.
특히 내각의 핵심 부서인 재무부(조지 오즈번), 외교부(윌리엄 헤이그), 국방부(리엄 폭스), 건강부(앤드루 랭슬리), 교통부 장관(필립 해먼드)은 2005년 캐머런이 보수당 당수가 된 직후 첫 예비 내각 때부터 함께했던 이들로 꾸며졌다. 5년 동안 당 대표와 함께 예비 내각을 운영하며 여당을 견제하고 차기를 준비해 온 이들이 국정을 운영하다 보니 국민들의 불안감이 덜한 건 당연하다.
야당 예비 장관들은 부처 장관처럼 별도의 월급도 받고 인력도 채용할 수 있다. 아무리 앙숙이라도 해당 부처 장관은 자신의 파트너인 예비 장관에게 정책 실행 전 설명과 이해를 구하고 자료를 제출하는 게 관행화돼 있다. 그렇다 보니 야당 역시 국정 운영의 또 다른 견제의 축으로 참여해 책임감을 갖고 대안을 제시하게 된다.
예비 내각들이 대표에게 반기를 들기도 한다. 지난해 6월 노동당이 반대했던 브렉시트가 현실화되자 예비 내각 절반이 코빈 대표를 불신임한다며 사퇴했다. 치열한 권력 투쟁 끝에 코빈은 대표직을 유지했지만 2015년 9월 취임 이후 국방부 예비 장관만 4명째 바뀌는 등 불안한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