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전문 서점 ‘초원서점’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초원서점’ 내부. 책장 위엔 세계문학전집, 난로 위엔 누런 놋쇠주전자가 앉았다. 타임머신 타고 숨은그림찾기 하러 온 기분이다. 뜻밖에 20, 30대 손님이 많다. 손님 김슬 씨(27)는 “영화 ‘쎄시봉’ 속에 들어온 것 같다”고 했다. 안웅철 사진작가(anwoongchul.com) 제공
임희윤 기자
오후 3시 57분. 턴테이블 위에 걸린 작은 괘종시계가 네 번 울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시계에서 부리가 솟아 말하는 듯했다. ‘…여긴 애당초 시간을 잃어버린 곳입니다.’
26m² 공간 안엔 괘종시계, 구식 난로와 주전자, 턴테이블과 카세트덱, 용수철 모양 전화선이 달린 빨간 전화기, 낡은 책장 6개, 그리고 타자기…. 실내에 들어선 순간 가벼운 소름이 돋았다. 1980년대 우리 집 거실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아서다.
○ 시간을 잃어버린 서점
이곳은 지난해 5월 개업한 음악전문 서점이다. ‘초원서점’(02-702-5001·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아이디: pampaspaspas). 절판된 김현식 유고시집부터 신간인 ‘핑크 플로이드의 빛과 그림자’까지 600여 종의 책 곳곳에 주인장이 낡은 마라톤 타자기로 친 소개 글이 붙어 있다. 인디 음반도 판다.
카세트덱에 붙은 턴테이블 위엔 김창완의 ‘기타가 있는 수필’(1983년) LP판이 돌고 있었다. 그 옆엔 나나 무스쿠리, 동물원, 박광현의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섰다. 테이프로 음악을 틀 때도 있다.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의 시대, 서른 즈음 김창완의 맑은 목소리가 먼지 사이를 떠다닌다. ‘시간의 고동소리 이제 멈추면/모든 내 방의 구석들은 아늑해지고…’(‘내 방을 흰색으로 칠해주오’ 중)
○ 독자엽서, 백일장, 통기타교실
이곳엔 동네 서점의 매력이 넘친다. 통기타 연주와 작사 수업으로 구성된 ‘초원음악교실’엔 매주 수요일 열 명 남짓의 수강생이 찾는다. ‘초원초대석’ 시간엔 저자나 평론가를 초빙해 음악을 함께 듣는다. 얼마 전엔 ‘제2회 초원백일장―나의 광석’을 열었다. 다음 달엔 노랫말 필사(筆寫) 모임이 시작된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오는 젊은 분들도 좋지만 동네 분들이 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이 자리는 전에 구제 옷 창고로 쓰였다. 그 전엔 미용실이었다. “책 한 권 살 때마다 책갈피랑 독자엽서를 드려요.” 엽서엔 270원짜리 우표가 인쇄돼 있다. 책 산 사람이 간단한 서평을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주인장에게 돌아온다. “책과 음악을 좋아했지 굉장한 꿈을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서점은 없어지고 음식점만 즐비해지는 거리가 싫었어요.”
주인장은 4년간 종사한 카페 매니저를 관두면서 받은 약간의 퇴직금에 저금을 보태 창업했다. 자본금은 1000만 원도 안 된다. 지금 매출은 월세를 겨우 감당할 정도. 그래도 행복해 보였다.
괘종시계가 다섯 번 울었다. 4시 57분. 언젠가의 아이를 떠올렸다. 아파트와 학군 말고 동네와 골목에 휘날리던 그의 머리칼. 이제는 연락처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깜짝 선물을 남기고 싶어졌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