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무차별 사드 보복은 한국을 예전의 조공 바치던 속국으로 생각하기 때문인가 대국으로 존중받으려면 ‘글로벌 룰’도 존중해야 보복에 무릎 꿇을 순 없다 국론통일-준비-인내로 장기화에 대비해야 할 것
심규선 고문
그러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중국과 중국 매체의 오만한 태도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과 일본 등에는 엄격한 한국 언론이 중국에는 무슨 빚을 졌기에 이리도 호의적인가. 중국이 어떤 정치체제를 유지하든, 중국 언론이 국내 문제를 어떻게 다루든 그건 중국의 선택이다. 그러나 이웃나라와 다툼이 있는 문제를 놓고 100% 자신만이 옳다고 강변하며, 힘을 앞세워 겁박하는 것까지 침묵할 수는 없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의 언론들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제국주의 정권의 나팔수가 됐다. 의심도, 검증도 하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이 최대의 피해자다.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나 전쟁이 끝난 뒤 일본 언론들은 통렬하게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부(負)의 역사’는 아직도 일본 언론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더 ‘슬픈 일’은 따로 있다. 세계의 중심이었던 중국은 100여 년 전 서구 열강의 먹잇감이 됐고, 그 치욕을 씻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그런데 지금 중국의 모습을 보라. 그토록 미워하던 서구 열강의 탐욕을 닮아가고 있지 않은가. 힘으로는 다른 나라의 고개를 숙이게 할 수는 있으나 마음을 숙이게 할 수는 없다.
나는 사드 배치를 둘러싼 이견과 중국의 경제 보복은 명백히 분리해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드는 우리가 숙고해서 배치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나는 배치에 찬성한다). 그러나 사드를 배치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중국의 보복에는 절대로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게 주권이다.
국내도 문제다. 흔히들 우리 민족에게는 국난 극복의 DNA가 있다고 한다. 이젠 거짓말이다. 우리는 내우(內憂)에도 나라가 둘로 갈리는 현실을 매일처럼 목도하고 있다. 하물며 외환(外患)이랴. 실체 없는 DNA를 과신해서는 안 된다. 국론 통일, 준비, 인내만이 살길이다.
중국의 보복은 단순히 사드 배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는 미중의 패권 경쟁, 아시아에서는 중일 헤게모니 쟁투의 일환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한미 동맹과 한미일 공조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중국과 더불어 사는 방법도 고민하게 된다. 북핵 문제, 통일 문제도 같은 구도에 놓여 있다.
요즘 중국의 관광 보복을 극복한 일본의 사례를 많이 보도한다. 전화위복은 저절로 된 게 아니다. 우리 정부는 지금 뇌사 상태이고, 관광자원과 인프라도 일본만큼 풍부하지 않으며, 일본 국민만큼 잘 참으리란 보장도 없다. 고통이 훨씬 크고 길 것이라고 각오해야 한다. 그런 현실을 솔직하게 알리고 준비를 돕는 게 정부와 오피니언 리더들의 역할일 것이다.
중국 기자들만큼 애국심을 발휘하려고 했는데, 결국은 우리나라에 대한 비판이 더 많아졌다. 고민은 많아도 한국에서 기자 생활 하고 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심규선 고문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