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거장은 영원한 거장임을 확인시켜 주는 자리였습니다.
세계적인 테너 호세 카레라스(70)가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가졌습니다. 2014년 이후 3년 만의 내한공연이었습니다.
공연 전만 하더라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3년 전 두 차례 리사이틀이 예정됐었지만 감기로 인해 한 차례 공연을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한 차례 공연도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카레라스가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일부 곡은 키를 낮춰 부르기도 했고, 폭발력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습니다. 굉장히 좋은 맥주를 먹고 있지만, 조금은 김이 빠진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목소리, 표정, 손짓에서 풍부한 감정과 표현력, 해석력 그리고 위엄이 느껴졌습니다.
2부 마지막 곡으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로 공연이 끝났습니다. 객석 여기저기서 기립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장사익 선생님이 카레라스에서 꽃다발을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연이 다소 디너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사실 1, 2부 때 카레라스가 다소 김빠진 목소리를 들려준 것은 공연의 구성상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바로 앙코르, 다시 말하면 3부를 위해 아껴놓은 것이었습니다. 이날 앙코르는 공연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카레라스는 총 6곡의 앙코르 중 무려 4곡을 불렀습니다. 앙코르 곡이 끝날 때 마다 대부분의 관객이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카레라스는 1, 2부 때 내지 않았던 폭발적이면서도 힘 있는 고음을 들려주었습니다. 물론 전성기에 비하면 다소 부족한 폭발력이었지만 곡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첫 앙코르곡인 ‘로마의 기타(Chitarra Romana)’를 부를 땐 관객에 대한 배려도 인상 깊었습니다. 오케스트라 또는 독주회 때와는 달리 성악 리사이틀 또는 콘서트는 무대 뒤쪽 합창석은 추천할만한 좌석이 아닙니다. 성악가를 등지고 앉아 소리가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카레라스는 첫 앙코르곡을 합창석 관객을 향해 불렀습니다. 물론 합창석을 제외한 다른 관객은 이날 처음으로 카레라스의 뒷모습을 봤습니다. 곡이 끝나자 누구 하나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거장의 배려에 모두가 일어나 박수를 쳤습니다.
1시간 40여분의 예정된 공연 시간을 넘겨 이날 공연은 약 2시간 20분 정도 진행됐습니다. 공연 뒤 관객의 표정을 살펴보았습니다. 대부분의 관객의 표정은 이랬습니다. “오늘 만큼은 누가 뭐래도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야.”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