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동 정치부 차장
6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지난달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북극성-2형’ 발사, 김정남 피살 사건은 그 고민의 결과물로 보인다. 김정은은 고체연료와 무한궤도형 이동식발사차량(TEL)을 이용해 미국의 정찰을 피해 미사일을 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북극성-2형 발사 다음 날 김정남을 살해한 것도 우연의 일치로 보기는 어렵다. 왜 하필 이 시기에, 국제사회가 민감하게 여기는 화학물질 VX를 이용해 공개적 장소에서 일을 벌였을까.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다만 수위는 조절한 기색이 역력하다. 6일 발사된 미사일의 사거리는 1000km, 북극성-2형은 2500∼3000km로 미국에 직접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김정남 피살은 충격적 사건이지만 미국과는 큰 관련이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김정은이 여기서 멈출지, 더 나아갈지에 따라 한반도에 닥칠 풍랑의 크기가 달라진다. 김정은의 궁극적 목적은 미국과의 전쟁이 아니라 북-미관계를 활용한 정권 안정이겠지만 작은 오판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가늠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외교안보 당국자는 “북한이 ICBM 개발을 완료했다고 판단되는 순간 북핵 문제의 성격이 180도 달라진다”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의 임계치를 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에 아직까지 북한 문제는 국제안보 사안이지만 ICBM을 갖게 되면 미국의 국내안보 문제가 된다는 취지다.
원칙적으로 자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국을 공격하는 예방 타격(preventive strike)은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자국에 대한 공격 징후가 포착됐을 때 상대방을 공격하는 선제 타격(pre-emptive strike)과 차이가 크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법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북한이 핵무기 탑재 ICBM을 발사할 수 있다는 결정적 증거가 있다면 예방 타격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존 매케인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의 발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타격이 현실화된다면 한국으로서는 최악의 경우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반면 실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전격적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다른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일자리 증대와 자국의 이익 극대화”라며 “엄청난 전비와 희생이 따르는 해외에서의 전쟁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대화를 선택한다고 해도 대북 강경기조를 유지해온 한국 정부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다.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