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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최우열]헌법재판관들에게

입력 | 2017-03-07 03:00:00


최우열 사회부 기자

시대가 혼란할수록 역사서를 찾게 된다. 지난해 읽은 ‘조선의 지식계보학’(최연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음)을 다시 집어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곧 결정해야 할 헌법재판관들이 판단 기준의 하나로 삼았으면 하는 대목이 있어 소개한다.

조선의 국가 공인 지식인 ‘인증센터’라고 할 수 있는 서울 종로구 문묘(文廟)엔 ‘문충공(文忠公) 정몽주’의 위패가 있다. 종묘(宗廟)가 혈통 중심의 왕을 모신 사당인 반면 문묘는 시대를 상징하는 지식인 대표 선수를 뽑아 놓은 곳이다. 태종 9년 “고려 때 선정된 설총 최치원 안향만 문묘에 있고 조선 대표 지식인은 한 명도 없다”면서 선발의 공론화가 시작됐다. 그 후 108년 만인 중종 12년 정몽주는 조선 문묘 종사 첫 인물로 선정됐다.

조선 창업과 고려 연장 사이에서 이방원과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인 정몽주는 조선의 역적이었다. 개경 거리엔 그의 목이 내걸렸다. 그런데 중종반정 후 사헌부와 사간원 홍문관 등 언론 삼사가 “충성과 절의만큼은 배울 만하다”며 정몽주를 강하게 밀면서 첫 공인 지식인이 됐다. 삼사를 장악한 조광조가 김종직 김굉필 등 연산군에게 희생된 스승들을 정몽주와 ‘충절 라인’으로 묶어 문묘에 종사하려다 정몽주만 낙점된 결과다. 여론은 언제나 변하고 권력의 속성도 수시로 바뀐다.

이렇게 강력해 보이는 조선 언론 삼사는 연산군 때 거의 망했었다. “일부러 임금의 허물을 만들어 내려 한다”는 연산군의 분노에 맞서 사사건건 대립했다. 폭발한 연산군은 꼬투리를 잡아 관료들을 처형했고 홍문관 폐지와 사헌부 및 사간원 축소 조치를 단행했다. 그래도 삼사가 “조정은 한 사람의 조정이 아니다” “지나친 간언도 받아들이는 게 임금의 도량”이라고 왕을 질타한 모습은 요즘 언론 이상이다. 직원들이 죽어 나가고 부처 자체가 없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제 역할을 다했다. 이것이 연산군 사후 삼사가 정몽주를 시대의 상징으로 끌어올릴 정도의 힘을 가진 원천이 됐다.

지금 헌법재판관 8명 앞에는 외부의 적이 있다. 외부의 적은 여론이라는 막강한 세력이다. 여론엔 ‘촛불’과 ‘태극기’의 위세로 재판관들을 위협하는 세력이 하나요, 뒤에 숨어 가짜 정보와 과장 정보로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는 정치세력이 둘이다. 또 다른 적은 바로 헌재의 조직보호 논리를 내세운 압박이다. 입법·행정·사법권 3권에서 경계가 애매한 조직의 위치에 따른 우려다. ‘이쪽 손을 들어주면 개헌 과정에서 헌재 무용론이 제기돼 폐지로 이어질 수 있다’ ‘저쪽 손을 들어주면 대법원에 일부 기능을 뺏겨 권한이 축소될 수 있다’는 말로 헌재를 은근히 압박하는 것이다.

재판관 개개인은 이런 적들로부터 철저히 독립해야 결론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역사와 양심 앞에 떳떳할 수 있다. 여론만큼 오락가락하는 것도 없고 기관의 존폐만큼 일시적이고 사소한 게 없다. 역사 속 롤러코스터를 탄 정몽주와 조선 언론 삼사, 그 후 어느 대목에 박 대통령의 이름과 재판관들의 결정도 기록될 것이다.

최우열 사회부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