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배경 만화 그린 두 작가
1987년 1월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죽음에 이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탁 치니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 12시경 사망했다’는 공식 발표를 내놨다. 하지만 분노한 시민들은 약 20일간 국가 폭력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 이는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1987년 당시를 만화로 그려낸 두 작품이 있다.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된 강태진 씨(45)의 ‘조국과 민족’과 수사반장(필명·32)의 ‘김철수 씨 이야기’다.
○ 깡패나 다름없던 국가…짓밟힌 개인의 삶
‘조국과 민족’ 작가 강태진 고문-살인 서슴지 않는 정보기관원, 깡패짓한 이들이 역사 무대에 버젓이. 레진코믹스 제공
“펄펄 나는 스토리 역량과 시대에 대한 꼼꼼한 고증이 더해진 작품.” ‘조선왕조실록’을 그린 박시백 화백은 만화 ‘조국과 민족’을 이렇게 평했다. 강태진 작가는 “시대의 슬픈 이야기를 해야 하지만 재미를 잃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김철수 씨 이야기’ 작가 수사반장 군사독재에 짓밟힌 힘없는 개인, ‘민주화’도 억압의 명분이 돼선 안돼. 레진코믹스 제공
‘김철수 씨 이야기’는 이전 연재 사이트에서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연재 중단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그당시 독자 187명에게서 530만 원을 지원받아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작가는 개인적인 이유로 실제 이름과 얼굴 공개를 꺼렸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실제 사건과 인물을 배경으로 하기에 신중함이 필요했다고 작가들은 말했다. ‘조국과 민족’의 강 씨는 만화를 위해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자서전을 비롯해 중앙정보부 공작원의 회고록을 읽었다. “좌우(左右) 할 거 없이 열변을 토하는 사람은 대부분 조국과 민족을 들먹이죠. 정치적 수사치곤 고리타분한 듯하지만 일종의 주술입니다. 아직도 그 같은 주술에 취한 사람이 버젓이 존재합니다.”(강 씨)
○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했던 그 시절
‘어쩔 수 없이.’ 극중 김철수가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하는 단어다. 국가나 개인이 저지른 폭력을 합리화할 수 있어서다. “어르신들은 간첩을 잡아서 때렸던 게 그 시대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폭력은 잘못된 거죠. 진보, 보수 할 거 없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개인이나 사회 모두 불행해집니다.”(수사반장)
강 씨도 이런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주로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데 사용됐다고 했다. “국가나 조직도 중요하지만 전체보다는 개개인의 존엄성에 가치를 더 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강 씨)
민주주의 역시 ‘대의’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철수 씨 이야기’에는 시위하다 감옥에 갇힌 최민주가 ‘민주화를 위해 자살해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1980년대 후반엔 그런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독재를 무너뜨리려는 이유는 전체에 의해 개인이 희생되는 걸 없애기 위한 것인데, 민주주의를 위해 죽는다는 건 역설입니다. 다른 듯 보여도 결국 같은 폭력입니다.”(수사반장)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