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공주 수촌리 고분 발굴
수촌리 4호 석실분 출토 금동관으로 높이는 19cm.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삼국시대 장신구 연구 권위자인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수촌리 금귀고리는 현미경으로 200배를 확대해 봐도 만듦새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며 “백제 왕실에 소속된 최고 장인의 솜씨”라고 말했다. 그러나 4∼5세기 한성백제시대 수촌리는 백제 영토였지만 중앙과 멀리 떨어진 지방이었다. 이 1급 유물들이 왜 한성이 아닌 이곳에 묻혀 있을까.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2003∼2013년 수촌리를 발굴한 이훈 당시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발굴단장(55·현 공주대 공주학연구원 연구위원)과 현장을 찾았다.
○ 묘제(墓制) 세 번이나 바뀐 사연
수촌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공주 수촌리 고분에서 출토된 구슬과 대롱옥. 구슬 지름은 0.2-1.05cm 정도 된다.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흥미로운 건 무덤들이 조성된 양식이 빠르게 변한 흔적이다. 시대순에 따라 덧널무덤(토광목곽묘)과 구덩식 돌덧널무덤(수혈식 석곽묘), 앞트기식 돌덧널무덤(횡구식 석곽묘),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이 모두 발견됐다. 유물로 보면 분명 같은 집단인데 불과 60년 동안 묘제가 세 번이나 바뀐 셈이다.
중국 동진에서 만들어진 흑유닭모양항아리. 당시로선 최고급품에 속한다.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이훈 공주대 공주학연구원 연구위원이 6일 국립공주박물관에 전시된 수촌리 고분 금동관을 살펴보고 있다. 뒤쪽 금동관이 이 연구위원이 4호분에서 발굴한 것으로, 앞쪽은 원형을 복원한 복제품이다. 공주=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1600년간 제자리 지킨 목관 꺾쇠·관못
수촌리 1호분 토광묘에서 출토된 금동관으로 높이는 약 18.7cm.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길이 35cm의 재갈.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말을 탈 때 쓰는 등자로 길이 25.0cm.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쇠창으로 길이는 29.2cm.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공주 수촌리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 신발(첫번째 사진), 금동관(두번쨰 사진)과 대롱옥. 부부가 묻힌 4호분과 5호분에 각각 부장된 대롱옥을 맞춰보니 아귀가 딱 맞았다.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2004년 7월 발굴팀에서 사진을 담당한 이형주 연구원이 흥분한 목소리로 갑자기 외쳤다. 수촌리 고분 출토 유물들을 늘어놓고 촬영하던 이형주가 4호분과 5호분에서 각각 나온 대롱옥(관옥) 2점을 우연히 맞춰봤는데 거짓말처럼 아귀가 맞았다. 원래 하나였던 대롱옥을 두 개로 부러뜨린 뒤 남편과 아내 무덤에 각각 부장한 것이었다. 생전에 금실 좋던 부부가 내세에 가서도 다시 만나자는 의미로 쪼갠 게 아닐까.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떠올리는 역사의 내러티브는 때론 소설보다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27>경주 사천왕사터 발굴
<26>부여 왕흥사 목탑 터 발굴
<25>공주 석장리 유적 발굴한 박희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공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