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1. 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하던 김난영 씨는 대학원에 들어가 미학을 전공한 뒤 대학 강사를 하던 중 미국 유학을 결심, 미술 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교수가 되었다. 2007년 결혼한 지 10년이 되던 해,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 교수는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다가 대도시에 위치한 화려한 고딕 성당과는 달리 시골의 아담한 로마네스크 성당을 보며 한국의 산사에서 느꼈던 평온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 뒤로 매년 로마네스크 성당을 찾아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작년에 낸 ‘로마네스크 성당, 치유의 순례’는 그 탐험의 결과이다.
#2. 일본 여행회사에 다니는 시노다 영업과장은 27세가 되던 1990년 8월부터 매일 저녁 그날 먹은 식사를 그림으로 그린 ‘그림 식사일기’를 대학노트에 쓰기 시작했다. 미술을 따로 배우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좋아했고, 술에 취한 때에도 저녁에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펴고 그날 먹은 것을 기억해 그려냈다. 2012년 일본 NHK 방송에 시노다 과장의 식사 일기가 공개되고, 그의 그림일기는 책으로까지 출판되었다. 국내에서도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란 제목으로 나왔다.
둘째, 모두 자기만의 주제를 찾고, 정기적으로 꾸준히 해나갔다. 한 사람은 로마네스크 성당을 찾아 매년 여행을 다니고 사진을 찍고 글을 썼으며, 또 한 사람은 매일 저녁 자신이 먹은 것을 ‘덕후’처럼 집요하게 그려내며 하루를 정리했다. 여행이나 그림, 맛집 탐방 등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안에서 자기만의 관심사를 찾아내고, 자기만의 탐구를 정기적으로 오랜 기간 해나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셋째, 자기만의 결과물을 축적해갔다. 김 교수는 사진과 글로, 시노다 과장은 그림일기라는 형식으로. 처음에는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기록을 남겨갔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물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책이라는 결과물로 세상에 나왔다.
이들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을까. 직장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출근해서 회의로, 그리고 회식으로 피곤하게 산다. 그럴수록 우리는 명함에 쓰여 있는 소속과 직책만의 ‘모자’ 외에 누구와도 상관없는 자기만의 모자가 필요하다. 그것은 직장에서 성공이나 생산성과는 상관없이, 자기만의 위로나 재미를 주는 모자여야 한다. 어린 시절 꿈이 소설가였다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오늘 저녁부터 자기만의 소설을 구상하고 집필에 들어갈 수도 있다. 바쁜 생활 속에서 잊고 지내던, 하지만 자기를 흥분시키는 대상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미술, 목공, 요리, 독서, 글쓰기, 시, 심리학, 역사, 여행, 만년필, 연필, 그릇…. 주변 사람들이 알면 ‘아니 그런 걸 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기만이 알아주는 모자가 필요하다. 직장의 일과는 상관없는 자기만의 몰입 대상이 있을 때 우리는 자기만의 재미도 느끼고,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으며, 세상을 새롭게 보는 하나의 창을 제공한다. 가끔씩 생각만 하고 동경했던 ‘그것’을 이제 시작해 보면 어떨까.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