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용 교통기술사 전 교통연구원 원장
이러한 횡단보행 편의 조치는 무단횡단을 줄여 사고 감소를 유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불편한 횡단보행 시설 못지않게 무단횡단을 유혹하는 것은 바로 ‘빨간불 기다리는 시간’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빨간불 시간이 최대 3배까지 길어 2분을 넘나든다. 이 시간이면 시속 60km로 주행하는 자동차는 2km를 더 갈 수 있으며, 서서 기다리는 사람에게도 큰 불편이다. 그뿐만 아니다. 신호는 일정 주기를 정해놓고 운영되기 때문에 빨간불이 길다는 얘기는 나머지 파란불이 짧다는 얘기이고, 이 때문에 자동차의 대기 행렬이 길어져 교통체증을 일으킨다. 따라서 상기한 횡단보행로 설비 확장도 좋지만 빨간불의 길이도 고려해볼 문제이다.
왜 우리나라 신호에서 빨간불이 길까. 이는 좌회전 처리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비보호의 경우 신호가 한 번만 바뀌면 되므로 빨간불과 파란불의 길이가 같다. 다른 나라에서는 비보호 좌회전을 기본으로 하여 교차로를 설계하고 운영하므로 좌회전이 한 곳에 몰리지 않는다. 다만 그래도 좌회전이 많은 곳에서는 좌회전을 별도로 처리하도록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골목길에서는 우회전만 허용하므로 좌회전이 대형 교차로에 집중되어 안전을 위해 부득이 보호 좌회전을 채택할 수밖에 없어 신호가 3번 바뀌어야 파란불이 되는 4현시 신호가 불가피하다. 결국 차량이 좌회전을 할 수 있는 대로에 집중되어 불필요한 체증을 일으키고, 소로는 불법 주차장으로 전락한다. 이는 개별 교차로의 문제가 아니라 교통체계의 설계 및 운영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신부용 교통기술사 전 교통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