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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D/특별기획]3살 남아에 한약을 먹였는데, 머리카락이 모두…

입력 | 2017-03-08 11:08:00

‘한의학 과학화’ 어디로 가나 / 1부 ‘비방(秘方)’이 키운 불신






한의학이 위기다. 지난해 한 아이의 탈모사건으로 한약 부작용 논란이 커진데 이어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패소 판결이 이어졌다. 한의학 세계화를 위한 과학화와 표준화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기로에 선 한의학의 현 주소를 긴급 진단하고 그 대안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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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비방(秘方)’이 키운 불신
2부 기로에 선 한의학 과학화
3부 ‘의한(醫韓)협진’ 그 희망의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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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중인 어머니에게 한약을 권했던 정부영 씨.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 해당 한의원에 한약 성분을 물어봤지만, ‘비방’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2014년 10월, 40대 주부 정부영 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모시고 살던 어머니가 병원에서 간암 선고를 받은 것이다. 곧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암이 폐까지 전이되면서 병세는 더욱 악화됐다.

수술은 이미 불가능한 상태. 병원에서는 마지막 단계로 독성이 강한 ‘넥사바’라는 항암제를 권했다. 수명을 몇 개월 연장할 수 있지만 구토에 피부가 벗겨지고 통증을 수반하는 극심한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는 설명과 함께. 결국 정씨는 얼마나 더 살지 모를 어머니에게 그런 고통을 안기고 싶지 않아 주변 사람들과 인터넷을 통해 수소문한 끝에 한 한의원을 찾았다. 말기암 환자는 물론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된 환자도 고친다는 곳이었다.

“(인터넷) 사례담에 배에 찼던 복수도 없어지고 굉장히 호전된 상태의 사람들을 보여주니까, ‘암의 크기를 줄여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광고를 하니까 저는 그게 진짜인 줄 알았죠. 그야말로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었어요.”

한의원을 찾아간 정씨는 더욱 희망적인 설명을 들었다. 면역을 증진하는 약을 먹으면 암 성장이 멈추고 몸의 면역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어느 순간 암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것. 1개월에 380만 원이나 하는 고가의 한약이었지만 정씨는 희망의 끈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약을 먹어도 어머니의 병세는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악화됐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악화되는 병세에 대한 한의원 측의 설명.

“‘약을 드시고 나서 통증이 있는 것 같다’ 그러면 ‘그건 명현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엄마의 상태에 대해서 좋은 쪽으로 얘기를 하는 거예요. (2015년) 9월 중순 무렵에는 어머니가 너무 기운이 없어 하시는 거예요. 식사량도 크게 줄고. 그랬더니 (한의원에서)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으라는 거예요.”

암 고친다는 한약을 나눠먹으라니요?!

한약을 복용한 지 3개월 만에 정씨의 어머니는 결국 사망했다. 믿었던 한의원에 대한 배신감도 적지 않았지만, 고스란히 남은 고가의 한약을 어떻게 처분할지 문의한 결과에 대한 답이 더 충격적이었다.

“그냥 보호자들이 먹어도 돼요,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깜짝 놀랐죠. 암을 고치는 약이라고 해서 엄마한테 드렸는데 그걸 지금 나보고 먹으라는 거냐. 보통 사람이 먹어도 되는 약이 어떻게 항암 성분이 있는 거냐고 했더니 ‘이건 부작용이 없는 약’이라는 거예요.”

정씨는 한의원 측에 성분 공개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한의사 고유의 처방, 즉 ‘비방(秘方)’이라는 이유다. 과연 이 한약의 성분은 뭘까. 해당 한의원에 찾아가보니 원장은 다른 한의사에게 약 처방법과 함께 한의원을 고스란히 넘기고 다른 곳에 새로운 한의원 개업을 준비 중이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원장은 인터뷰는 물론 접촉 자체를 완강히 거부했다.

항암효과도 성분도 제대로 알 수 없는 한약들. 이대로 판매돼도 괜찮은 걸까. 김지호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한약재의 특수성을 감안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식약 공용 한약재라는 것이 189가지가 있습니다. 이 한약재들은 마트라든지 시장에서 누구라도 살 수 있는 것이거든요. 지금 이런 상황에서 한의사의 처방전이 공개되면 보다 더 많은 약물 오남용 사고가 있을 수 있죠.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좀 빨리 해결해 달라고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 달 만에 머리카락, 눈썹 다 빠져

머리카락과 눈썹이 모두 빠진 아이들. 부모들은 한약 성분을 의심한다.



한약 부작용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올해 다섯 살 된 장모 군은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다. 지난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국내 의료계에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아이다. 엄마는 3년째 아이를 데리고 유명 대형병원을 전전하는 중이다.

“진단 받기까지는 다섯 군데를 다녔고요. 최근에 진료를 본 곳은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지금 여기 중앙대병원까지 세 군데에요.”

특별히 앓은 병도 없는데, 아이의 머리카락은 어느 날 갑자기 모두 빠져버렸다. 엄마는 그 원인으로 한 소아전문 한의원에서 지어 먹인 한약을 의심한다.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한의원을 찾아간 것은 2015년 11월 중순. 그 시기, 아이는 밤에 잠을 잘 안 자고 한두 시간마다 깨는 일이 잦았다.

“(한의원에서) 애 면역을 좀 키우기 위해 녹용을 먹여야 한대요. 그 전 단계로 속 열을 빼는 약을 먹으면 좋다 하더라고요. 그게 뭐냐고 했더니 잠 못 자고 칭얼대는 아이들이 열이 많아서 그런 경우가 많으니까 그렇다고. 그럼 2주치 한 재만 지어달라고 했죠.”

그런데 약을 먹이기 시작한 지 3일 만에 아이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엄마는 채 한 달도 안 돼 아이의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나서야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았다.

“아이를 데리고 동네 소아과병원에 갔더니 깜짝 놀라는 거예요. 이 지경까지 왜 가만히 있었냐는 거예요. 정말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내일은 나겠지 하다가 시간만 가고, 점점 눈썹 빠지고 속눈썹 빠지고. 무슨 항암제 먹는 아이처럼. 나중에는 정말 많이 울었어요,”

해당 한의원은 아이의 건강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아이 엄마는 한약 이외에 달리 의심할만한 아무런 이유도 찾지 못했다고 반박한다. 한약을 지을 당시 한의원에서도 아이의 건강은 정상적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한약 때문에 탈모? “상상도 못한 일”

인천에 사는 김모 군도 같은 한의원에서 지은 한약을 먹고 비슷한 증세를 겪는다. 김군이 한약을 먹기 시작한 것은 생후 21개월 갓 지난 지난해 2월쯤이다. 아빠 김현겸 씨는 아이의 한약을 지을 때 별다른 진맥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둘째 아이인데, 열 경련이 조금 있었어요. 경기를 한다고 그러죠. 그래서 약을 좀 먹여야겠다고 생각해서 (한의원에) 가게 됐죠. 보통 아이들이 성인보다는 체온이 높거든요. 그런데 열이 많으니까 뭐 이걸 얼마를 먹고 또 다른 걸 먹고 최종적으로 뭐 녹용을 해서 보약을 먹는다는 1년 치 프로세스가 정해져 있었어요. 특별히 진맥을 본다든지 이런 것 없이 그냥 문진만 통해서 열을 내려야 한다고.”

한약을 먹은 지 한 달 만에 빠지기 시작한 김군의 머리카락은 점점 색깔도 탈색되고 얇아지더니 4개월 만에 눈썹까지 모두 빠져버렸다. 아빠 김씨는 아이의 탈모가 한약 때문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비슷한 한약을 첫째 아이가 먹었을 때는 별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유가 뭘까. 김씨는 누나가 근무하는 여의도 성모병원에 아이를 데리고 가 모든 검사를 다 해봤지만 지극히 정상이었다.

아이 탈모의 원인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던 김씨는 장군의 탈모사례를 언론을 통해 알게 되면서 비로소 한약의 부작용 가능성을 의심하게 됐다.

“제가 그 사건 기사 접하고 (한의원에) 다시 가서 얘기를 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애가 달리 먹은 약도 없고 대학병원 검사 결과도 이상이 없으니 당연히 한약밖에는 의심할 수 없는 것 아니냐. 한의원 쪽 얘기가 동의보감이나 중국 고서, 그러니까 한 600년이나 700년 전 책에 기록만 돼 있으면 임상을 할 필요가 없다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되게 황당했어요. 우리가 600년 전 사람하고 같은 체질이 아니잖아요. 그때 제조 방식 그대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되게 무책임한 얘기를 계속 하더라고요.”

“한약과 탈모 인과관계 확인 어려워”

탈모 아이들에게 한약을 조제해 준 H한의원 원외탕전원.



그렇다면 아이가 먹은 한약에는 대체 어떤 성분이 들어있을까. 김씨가 한의원에서 받은 한약 봉지에는 한의원 이름과 숫자 1, 2만 적혀 있을 뿐 성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표기도 돼 있지 않다. 김씨는 아이 체질에 맞게 처방한 게 아니라 원외탕전원에서 대량으로 사전 생산 판매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해당 한의원 원외탕전원 관계자는 “한의사의 처방에 의해 조제한다. 탕전원은 제약회사가 아니니까 미리 만들어놓고 팔수가 없다”고 반박한다. 또 “설사 부작용이 있더라도 그 인과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한의원 측의 설명이다.

“탈모도 그렇고, 약을 먹고 배가 아프거나 두드러기가 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원치 않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데요. 그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쉽지 않을 거고요. 저희도 명백히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누군가가 밝힌다고 해도 저희 진료 건수나 약 처방 경험 등 여러 가지를 봤을 때 인과관계가 낮은 것 중에 하나가 아닐까라는 그냥 합리적인 판단을 저희는 하는 거예요.”

“탕약 안전성 확인할 필요 있어”

남점순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과장은 “한약 제조 및 품질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한약 제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한약재는 모두 602개다. 독극물이나 유해성분 검사와 세척, 법제화 등을 거쳐서 규격화된 약재들이다. 의료법상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이들 약재로 조제된 탕약은 별도의 검사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미리 만들어진 탕약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들 한약재를 탕약으로 조제하는 과정에서 어떤 유해성분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검사절차가 없다는 것이다. 지속되는 한약 부작용 논란 속에 소비자들의 불신이 커지자 정부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남점순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과장의 설명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정말 탕약이 안전한지, 독성은 없는지, 이런 부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 올해 예산에 한약재 GMP(Good Manufacturing Practise·제조 및 품질관리기준) 인증 시설 또는 원외탕전원 등에서 제조 및 품질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설계비를 반영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한편 장군 엄마는 해당 한의원을 상대로 민·형사상 법적절차를 밟으면서 긴 싸움을 준비 중이다. 사실 피해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으면 의료기관과의 법적 분쟁에서 고소인의 승산은 그리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아이가 복용했던 한약을 한 대학 실험실에 성분분석을 의뢰한 결과, 모발을 공격하는 독성 인자가 발견됐다는 보고서가 그나마 다퉈볼 수 있는 근거다. 엄마가 법적분쟁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은 앞으로 커가면서 상처받을 아이의 마음이다.

“사실 생각하기도 무서워요. 지금은 애기니까 귀엽고 머리가 없어도 괜찮은데, 초등학교만 가도 너무 튀니까 분명히 상처 받을 텐데…. 그때는 정말 고통스럽고 아이한테 너무 미안할 것 같아요. 제가 먹였으니까.”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