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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정성진]대한민국 민주주의 새롭게 시작하자

입력 | 2017-03-11 03:00:00


정성진 국민대 명예교수·전 법무부 장관

2017년 3월 10일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길이 남을 날이다. 비단 국민의 직접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헌법 절차에 따라서 처음으로 파면 결정을 받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가 헌법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재판관 전원 일치의 의사로 명시되고, 그것도 항간의 일부 주장과 같이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폐습의 청산이 본래 취지라는 보충 의견까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얼마 전 미국 국무부가 펴냈다는 ‘2016년 국가별 인권보고서’가 우리의 이번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일련의 수사와 탄핵심판 과정을 부패와 인권 문제로 접근하여 평가했다는 점도 결코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사실의 일면을 정확히 보았다고 수긍하지 않을 수 없기도 하다.

국가적 리더십 실종된 현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사실 지금도 다른 우려를 하고 있다고 보아야만 한다. 지금 나라의 안보 상황이나 경제 현실이 그러한 헌법재판 결과만을 가지고 희비를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중국의 이른바 사드 보복,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도발 이외에 교활하기 짝이 없으나 큰 눈에서의 협조가 불가피한 대일관계, 그리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유대 강화 등 산적한 국가적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소비 위축과 실업, 경기 후퇴의 양상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국가적 리더십은 실종되고, 행정 기능은 현상유지적 답보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뼈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살펴보아도 16세기 말 선조 때의 임진왜란이나 17세기 중반 인조 때의 병자호란, 그리고 20세기 초 한일강제합병이 모두 일본과 명, 청 등 중국과의 국방, 외교 소홀과 실패에서 비롯된 것임을 상기한다면, 지금의 국가적 상황이 얼마나 위중한 것임은 재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선 의식한 정치과잉 현상

지금은 사회의 모든 분야가 기본부터 정상화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정치우선, 정치과잉 현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공직자들은 업무를 통한 성취감보다 보신적 현상유지 쪽으로 기울 우려가 농후하다. 아니, 이미 무사안일이 시작되고 있는 느낌조차 없지 않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경험 있는 지도층과 소수일지라도 사명감에 충만한 공직 엘리트들이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다. 그래서 우선 다음 몇 가지 사항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출마든 추대든 당분간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를 사양하고 국정에 전념할 필요가 있다. 안보관을 포함한 반듯한 몸가짐과 보수적 기독교계의 지원이 대통령 후보자로서의 좋은 여건이 되겠지만, 지금의 국가·사회적 현실이 너무 각박·엄중하여 다시 부총리에게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길 만큼 여유롭지가 못하다고 보아야만 할 것이다. 법률가로서 익힌 균형감과 신앙인으로서의 희생정신을 갖추었으니 나라와 국민을 위한 그만한 지혜로움은 능히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둘째, 대통령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는 모든 분들은 국민들의 큰 관심사가 안보와 경제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단순한 인기책이 아닌, 실사구시적인 정책을 깊고 넓게 검토하여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토록 진심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물론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정책이나 용어의 채택, 사용에는 더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맡고 있는 분들은 끝까지 그 임무 수행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공직자들 책임감 있는 헌신 절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은 공직자들의 책임감 있는 헌신이다. 공직자들은 명예감으로 산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것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공직자들이다. 영혼 없는 공직자들의 끝을 우리는 이번 탄핵 사태와 관련해서도 많이 보았다. 나라가 어렵다. 국민들이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쓸쓸하다. 이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새롭게 시작하자.

정성진 국민대 명예교수·전 법무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