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제품의 ‘회춘’ 비결
김종근 오리온연구소 개발2팀 선임연구원이 전자 코인 ‘GCO’를 통해 시료에 첨가된 향을 직접 맡고 있다. GCO는 하나의 냄새가 어떤 성분과 세기로 구성됐는지를 분석해 식품의 맛과 조화로운 향을 파악하도록 돕는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15년 가을. 서울 용산구 오리온연구소에 모인 개발2팀 연구원들은 하나둘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새로운 초코파이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연구한 지 약 2년 6개월이 지나던 때였다. 오리온 본사에서 최근에 만난 강주진 선임연구원(48)은 당시를 떠올리며 “수백 개의 바나나 향 중에 하나를 골라 만든 시제품의 맛을 본 순간 ‘우리의 연구 방향이 맞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뒤 6개월이 지나 세상에 나온 ‘초코파이 바나나’는 식품업계에 바나나 열풍을 일으키며 ‘대박’을 쳤다.
1974년 세상에 나온 42세의 장수제품 초코파이가 지난해 새로운 제품으로 ‘회춘’하는 데엔 3년이 걸렸다. 김종근 선임연구원(37)은 “2013년 초부터 2년간은 어떤 맛으로 새로운 초코파이를 만들지를 고민했다. 2015년 4월에 바나나로 확정하고 나서 1년 동안은 개발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이달로 출시 1년을 맞은 초코파이 바나나는 기존 초코파이와 식품공학적으로는 ‘다른 제품’이다. 기존 초코파이는 쿠키 사이에 마시멜로를 넣고 겉에 초콜릿을 코팅해 완성된다. 반면 초코파이 바나나는 쿠키 대신 수분 함량이 낮은 ‘마른 케이크’로 만들었다.
강수철 개발2팀장(42)은 “바나나 향을 하나의 냄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풀 냄새, 꽃 냄새 등 여러 종류의 향이 조합돼 있다”고 설명했다. GCO는 하나의 향 안에 어떤 냄새가 배합됐는지, 그 강도가 어떤지를 그래프로 그려 분석한다. 이를 통해 제품 안에 들어간 향이 맛을 좋게 하는지 혹은 저해하는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것이다.
맛도 마찬가지다. 전자 혀인 ‘HPLC(High Performance Liquid Chromatography)’는 당의 함량을 측정한다. 사람들이 느끼는 초코파이의 단맛은 엄밀히 말해 포도당, 과당 등이 복합적으로 함유돼 나오는 맛이다. 강 팀장은 “여러 종류의 당은 맛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마시멜로의 흐물거리는 정도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비율을 측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감을 분석할 때에는 전자 입에 해당하는 ‘텍스처 애널라이저(Texture analyzer)’가 활용됐다. 압축기처럼 생긴 기계 사이에 초코파이 시제품을 넣고 누르면 바닥에 닿는 압력을 측정할 수 있다. 실제 입으로 깨물었을 때 어떤 느낌이 나는지, 얼마나 부드러운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이렇게 얻은 자료를 토대로 원료의 배합 비율을 어떻게 조정할지 판단하게 된다.
과학적인 개발 과정은 직접 제품의 맛을 보며 이뤄진 평가를 보완하는 데 아주 유용했다. 2015년 여름 연구원들은 매일 아침 그날 만든 시제품 6∼8개를 먹으면서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그렇게 테스트용으로 만든 초코파이 개수만 12만 개에 이른다.
그럴 때 향 맛 식감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가 격렬한 토론의 자료로 활용됐다. 한 책임연구원은 “명쾌하게 결론이 나오지 않을 때 데이터를 토대로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곤 했다”고 말했다. 강 팀장은 “최적의 맛을 예측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과학적 방법은 식품 개발의 중요한 요소”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오리온 초코파이 국내 전체 매출액은 사상 최대인 1400억 원을 기록했다. 이 중 출시 1년밖에 되지 않은 초코파이 바나나가 370억 원어치나 팔렸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