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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 City]비운의 조선 첫 국모… 아들 잃고 무덤 옮겨져

입력 | 2017-03-13 03:00:00

<2> 영화 ‘건축학개론’ 속 정릉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승민(오른쪽 누운 사람)과 서연(왼쪽)이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장면을 촬영한 서울 성북구 정릉의 입구(위쪽 사진). 두 사람 뒤로 보이는 홍살문을 지나 올라가면 능을 둘러싼 병풍석도 무인석도 없는 단출한 능이 나타난다(아래쪽 사진). 영화 ‘건축학개론’ 캡처·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정릉이 누구 능이야?”(교수)

“정조? 정종…? 정약용…?”(서연)

칠판에 붙인 대형 지도에 자신이 사는 곳을 표시하라던 대학 1학년 교양수업 건축학개론 첫 강의. 제주도에서 서울로 갓 이사 온 서연(배수지)은 교수의 질문에 쩔쩔맸다. 교수는 “자기가 사는 곳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해하는 것이 바로 건축학개론의 시작”이라며 자기 동네를 사진으로 찍어 보라는 과제를 내준다. 주인공 서연과 승민(이제훈)의 발걸음은 정확히 한곳에서 겹쳐졌다.

서울 성북구 정릉(貞陵). 400만 관객을 첫사랑의 추억에 빠져들게 만든 영화 ‘건축학개론’(2012년)의 배경이다. 카메라로 단풍이 물든 정릉 곳곳을 담던 승민의 뷰파인더 속에 서연이 뛰어들어 “저 알죠?” 하고 첫인사를 건넨 곳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끝내 나오지 않는 정릉의 주인은 조선 태조의 두 번째 부인이자, 조선의 첫 번째 국모(國母)인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다. 고려 말 호랑이 사냥을 나선 이성계가 목이 마르다고 하자 우물에서 길은 물을 담은 바가지에 “천천히 드시라”며 버들잎을 띄워 줬다는 바로 그 여성이다. 미모뿐 아니라 든든한 집안 배경과 지략까지 겸비한 그는 태조의 총애를 받는다.

하지만 서연과 승민의 첫사랑이 이뤄지지 못했듯, 태조와 신덕왕후의 사랑도 해로(偕老)하지는 못했다. 신덕왕후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지 4년 만인 1396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아들 세자 방석도 왕자의 난(亂) 때 첫째 부인의 아들 방원에게 죽었다. 슬픔에 빠진 태조는 지금의 중구 정동(貞洞) 영국대사관 자리에 거대한 능을 만들었다. 하지만 방원은 이마저도 왕위에 오른 뒤인 1409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버린다. 그전까지 정릉동으로 불리다가 ‘릉’자를 잃고 지금의 정동이 된 이유다. 당시 이장하면서 원래 능에 있던 목재나 석재를 청계천 광통교에 쓰는 등 상당 부분 훼손했다.

이 때문에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조선 왕릉이지만 정릉은 아담하다 못해 단출하다는 느낌까지 준다.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버스를 타고 ‘정릉입구’에서 내린 뒤 좁은 골목을 10여 분 걸어 올라가면 나온다. 300년 넘은 느티나무 보호수를 비롯해 수령이 수십 년 된 활엽수와 침엽수들이 둘러서 있어 계절마다 보기에 시원스럽다. 맑은 시냇물을 낀 2.5km 거리의 산책길도 조성돼 있다. 점심시간 관람권이나 상시 관람권(1개월), 시간제 관람권(1년)을 끊어 산책하듯 방문하는 동네 주민도 많다.

조선 왕조가 처음으로 지은 왕릉인 만큼 문화재로서 가치도 높다. ‘사후세계를 밝힌다’는 의미의 장명등(長明燈)은 고려시대 양식인 사각기둥 모습으로 서 있다. 제사를 지낸 뒤 축문을 태우는 소전대(燒錢臺)도 조선 초기 왕릉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정릉 근처에는 태조가 신덕왕후의 넋을 달래기 위해 만들었다는 흥천사가 들러볼 만하다.

7월 경전철 우이신설선이 개통되면 인근에 정릉역이 생겨 찾아오기는 더 쉬워질 것 같다. 자가용을 타고 오면 정릉을 둘러본 뒤 북악스카이웨이를 드라이브하면서 야경을 즐기는 것도 좋다. 관람료는 1000원. 오전 10시와 오후 2, 4시에는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능 바로 앞까지 올라가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매주 월요일 휴일.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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