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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8인 재판부 전원일치 탄핵 결정 막전막후

입력 | 2017-03-13 03:00:00

[대통령 파면 이후]92일간 탄핵심판 막전막후
뇌물죄 놓고 이견→ 논의서 배제 합의→ ‘8 대 0’ 전원일치




《 8인의 헌법재판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에 ‘전원 일치’ 합의하고 10일 오전 결정문에 서명하기까지 토론과 설득을 거듭하는 산고(産苦)의 시간을 보냈다. 헌재의 결정이 갈등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합의 계기가 되기 위해 일치된 의견을 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선고 요지를 낭독하며 “재판관 전원의 논의를 거치지 않은 결정은 단 하나도 없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 등을 둘러싸고 재판관들 간 논란이 심했던 1단계에서 논점이 정리된 2단계, ‘전원 일치’ 결정을 위해 설득에 몰두한 3단계까지 이어진 92일간의 막전막후. 그 결정적 순간들을 소개한다. 》
 

일상 되찾은 헌법재판소 12일 오전 관광객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에 반발하는 ‘태극기 집회’로 10일까지 몸살을 앓았던 헌재 앞은 이날 차벽을 쳤던 경찰 버스도 사라지고 평상시처럼 평온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선고할 때까지 92일간의 여정은 헌법재판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다투면서 지혜를 모아간 한 편의 드라마였다. 1단계에선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 유무 등 사실관계와 법리 적용을 놓고 심한 이견을 보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묘수를 찾아내 논점이 정리된 2단계로 접어들었고, 3단계에선 ‘전원 일치’ 결정을 목표로 설득하는 작업이 펼쳐졌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선고 요지에서 밝힌 ‘역사의 법정 앞에 선 당사자의 심정’은 이 3단계를 거치며 재판관들이 짊어졌던 책임의 무게를 단적으로 드러낸 표현이었다.

○ 1단계: 뇌물죄 등 놓고 이견 팽팽

재판관들이 맞닥뜨린 첫 고비는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 등 형사법 위반을 탄핵 사유로 인정할지였다. 일부 재판관은 탄핵심판 법정에 섰던 25명의 증언과 검찰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위법 사실을 상당 부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일부 재판관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 등 국정 농단 사건 관련자들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범죄 사실을 확정하는 게 이르다는 이유에서였다. 추후 박 전 대통령이 기소될 경우 이어질 형사재판에 영향에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재단 설립은 선의로 한 일이고 최 씨의 비리를 알지 못했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을 최 씨의 공범이라고 인정하려면, 박 전 대통령에게 최 씨의 범죄에 가담하려는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대면조사를 하지 못한 검찰 수사기록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일부 재판관들의 의견이었다.

○ 2단계: ‘뇌물죄’ 배제로 돌파구 열려

재판관들은 논의를 거듭한 끝에 “뇌물죄 등 형사법 위반 여부를 박 전 대통령 파면 여부 판단에서 빼자”고 합의하면서 논점 정리의 실마리를 찾았다. 재판관 8명 모두가 인정하는 탄핵소추 사유만으로 박 전 대통령 파면 여부를 판단해 보기로 한 것이다.

탄핵 사유를 △사인(私人·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세월호 참사 대응) 등 4가지로 압축하자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이 제기한 박 전 대통령의 위법행위 중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만 판단 근거로 삼은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행위 중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8·구속 기소)이 최 씨에게 기밀자료를 보내도록 지시 또는 방조하고, 더블루케이 등 최 씨 소유의 회사가 특혜를 받도록 개입한 것 등 제한적 사실만을 결정문에 담은 게 그 결과였다.

재판관들은 결정문 작성을 돕는 헌재 연구관들에게 “‘혐의’ 등 형사적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고 헌법 위반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라”고 지시했다.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결정문에서 사실관계를 지극히 보수적으로 인정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 3단계: ‘전원 일치’ 위해 막판까지 설득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의 법률 및 헌법 위반 사실이 파면을 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것인지를 놓고 이견이 생겼다. 인용 정족수(6명)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재판관들은 ‘전원 일치’로 결정하자며 토론을 계속했다. “‘8인 재판부’가 일치된 결론을 내는 것이 국론 통합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게 전 재판관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재판관들은 평의를 거듭해 “박 전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정도가 심각해 대통령직에 복귀하더라도 국정 운영이 어렵다”는 결론에 합의했다. 이견을 나타낸 일부 재판관들을 설득한 결과였다. 박 전 대통령의 진정성 없는 해명과 검찰 및 특검의 대면조사 회피, 청와대 경내 압수수색 거부가 국민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불신을 줬다는 데 공감한 것이다. 8인 재판부는 10일 오전 선고를 1시간가량 앞두고 8번째 평의를 열어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문에 일치된 의견으로 서명했다.

신광영 neo@donga.com·배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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