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떠난 朴 前대통령]朴 前대통령 4년만에 삼성동 집으로
손 흔들며 인사 12일 오후 7시 40분경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 앞 골목으로 들어선 차 안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웃는 얼굴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위쪽 사진). 골목 양편에 늘어선 지지자 800여 명이 박 전 대통령을 태운 차가 지나가자 “탄핵 무효”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반기고 있다. 뉴시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2일 오후 7시 40분경 박 전 대통령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 앞에 섰다. 과거 공식 석상 때처럼 화장한 얼굴에 단정한 올림머리를 했다. 옷은 짙은 남색 재킷 차림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처음 차량이 골목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내려서 현관으로 들어서기까지 시종 미소를 띠었다. 그러나 자택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집 안에 들어가서도 한참 눈물을 흘려 화장이 지워질 정도였다고 한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은 “사저에 들어갈 때부터 눈물이 (박 전 대통령) 볼에 흐르고 있었다”며 “(밖에서는) 애써 웃는 표정을 지은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이날 청와대를 떠났다.
삼성동 사저는 이날 오전부터 막바지 입주 준비로 분주했다. 오전 11시부터 TV와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과 각종 집기류를 실은 대형 트럭이 오갔다. 경호인력의 엄격한 통제 아래 작업 인부들이 쉴 새 없이 사저를 들락거렸다. 주변 시선을 의식한 듯 사저 안팎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담장 주변으로 외부 시야를 가리는 나무와 간이벽이 설치돼 있어 집 안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창문 너머로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이 목격됐다.
삼성동 사저는 오랜 기간 비워둔 탓에 전체적으로 수리 및 점검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장 난 보일러를 고친 뒤 가동시키면서 집 안에는 연기도 차 있었다고 한다. 새로 구입한 침대는 박 전 대통령이 도착했을 당시 아직 비닐 커버도 뜯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경호동 건물도 확보하지 못해 급한 대로 사저 내 공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 지지자들 “사랑합니다” 연호
현장 분위기는 박 전 대통령의 도착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지지자들이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가운데 일부 지지자는 “음모에 당해 돌아온 대통령이 너무나 안됐다, 우리 대통령은 박근혜다”라고 말하며 주저앉아 통곡했다. 실신해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대통령님을 사랑하는 모임(대사모)’ 회장인 장민성 씨는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장 씨는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송한 마음이 들어 그렇게 했다”며 “대통령이 ‘고맙다’고 했다”고 전했다.
차량에서 내린 박 전 대통령은 침착해 보였다. 약간 긴장된 듯한 기색이었지만 미소를 지었다. 가장 먼저 현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등 자유한국당 친박 의원들이 박 전 대통령을 맞이했다. 박 전 대통령은 기다리고 있던 허태열 이병기 이원종 전 비서실장 등의 손을 꽉 쥐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대통령은 약 5분간 인사를 나눈 뒤 지지자들에게 “여러분들 덕분입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사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갑작스러운 결정
박 전 대통령의 이날 퇴거는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주말 내내 청와대 참모들은 비상근무를 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사저 복귀에 대비해 왔다. 하지만 이날 오전까지도 박 전 대통령 측은 “서울 삼성동 사저 수리가 끝나는 대로 이동할 텐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며 13일 청와대를 떠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오후 들어 청와대 외곽 경호경비를 담당하는 서울202경비단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분주해졌다. 삼성동 사저 주위에는 경찰이 추가로 배치되는 등 사저 복귀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오후 5시 반 박 전 대통령 측은 “오늘(12일) 저녁 퇴거가 확정적”이라고 공지를 했다. 수석비서관급 이상 청와대 참모들은 박 전 대통령과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관저를 향했다. 6시 반 관저에서 만난 청와대 참모들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엔 “보좌를 제대로 못해 죄송하다”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인사가 오갔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목이 메어 띄엄띄엄 말을 잇자 일부 수석은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는 후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당초 오후 6시 반에 청와대를 떠나기로 했으나 7시 16분이 돼서야 박 전 대통령을 태운 차량과 경호 차량들이 청와대를 빠져나갔다.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정원인 녹지원에서 직원 500여 명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다가 시간이 다소 지체됐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담담한 표정으로 직원들에게 “고생했다” “감사했다”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정지영 jjy2011@donga.com·최지연·황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