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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의 실록한의학]현종이 웅담-우황을 코에 바른 이유

입력 | 2017-03-13 03:00:00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효종의 아들 현종은 요즘 말로 하면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다. 그만큼 자주 아프고, 아픈 곳도 많았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현종은 즉위 초부터 한약을 먹었다. 그에게 가장 많이 처방된 탕제는 가감양격산. 화병으로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치료하는 약제였다. 현종은 즉위 후 7년 동안 이 탕약을 무려 63회나 먹었다.

이 약의 복용이 중지된 시기는 현종 7년. 신기하게도 소현 세자의 셋째 아들로 사촌지간이었던 경안군 석견이 죽고 난 다음부터다. 현종의 할아버지는 인조로, 그의 첫째 아들인 소현 세자가 갑작스럽게 죽자 둘째 아들인 효종이 즉위했고 그가 죽자 아들인 현종에게 보위가 옮겨갔다. 현종으로선 석견의 존재가 엄청난 부담이었다. 양격산을 그만큼 자주 많이 먹었다는 것은 그의 시대에 펼쳐진 예송 논쟁, 정통성 시비 등 수많은 당쟁이 그에게 병적 스트레스를 가했음을 의미한다.

즉위 초기 그를 괴롭힌 질환은 코가 건조해 생긴 위축성 비염이었다. 주로 처방된 약물은 청폐산, 세폐산, 황금탕. 이들은 각각 폐를 깨끗이 청소하거나 폐의 열을 내리거나 촉촉하게 하는 약물이다. 한방은 호흡기의 말단인 코의 기능을 폐가 조절한다고 본다. 스트레스로 심장이 뜨거워지면 그 위에 있는 폐 또한 열을 받아 건조해진다고 본 것.

따라서 코의 건강은 습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건강한 강아지를 사려면 코가 촉촉한 강아지를 사라고 하듯 코의 촉촉한 점액은 외부의 먼지나 이물질을 걸러내므로 내 몸의 면역력을 알 수 있다. 최근 급증하는 알레르기 비염도 코의 점막이 건조해지면서 지나치게 과민해져 일어나는 것. 우리 몸은 점막이 가려워지면 콧물과 재채기로 나쁜 물질을 뱉어내고 몸을 방어한다. 한방에선 몸의 이런 기능을 면역(免疫)이라 한다.

코의 열을 내리고 촉촉해지도록 현종이 사용한 연고는 웅담과 우황, 행인유로 만들었다. 쓰디 쓴 쓸개는 마음의 열을 진정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곰의 쓸개인 웅담과 소의 쓸개인 우황의 즙을 농축해 코에 발랐다. 비염의 염(炎)은 불 화(火)가 두 개나 겹쳐서 만들어진 글자다. 위축성 비염은 비염 중에서도 열이 심해 코의 점막이 바짝 마른 상태다. 살구씨 기름인 행인유를 쓸개즙과 함께 쓴 것은 쓴맛으로 열을 잡아 부어오른 점막을 가라앉히고 행인유의 매끄러운 성질로 코를 촉촉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봄철엔 코가 더욱 건조해진다. 점막에 딱지가 생기면서 코가 막히고 가래가 코 뒤 입으로 넘어간다. 현종이 바른 우황이나 웅담처럼 비싼 약재가 아니어도 코의 수난을 막을 수 있다. 수세미나 알로에가 그 좋은 예다. 수세미는 성질이 서늘하고 매끄러워 민간에선 오래전부터 위축성 비염 치료에 사용해 왔고, 알로에도 수분을 간직하는 탁월한 능력을 이용해 열이 많고 건조한 사람들의 변비나 피부 질환 치료에 많이 쓰였다. 꽃피는 봄, 코가 바짝 마르는 낌새가 보인다면 이 약재들을 상복해 비염을 방지해 보자.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