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파면 이후]외부 악재 엄습하는 한국경제
심각한 표정의 경제관계장관회의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차기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대내외 경제 변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의 협조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왼쪽부터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유 부총리,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기획재정부 제공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주가 금리 환율 등이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외국인 자금도 유입세를 지속하는 등 금융시장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다며 낙관론을 내놨다. 수출입 투자 등 실물경제에서도 특이 동향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리더십 공백 상태인 한국이 외교뿐만 아니라 경제 부문에서도 스스로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여지가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이 힘으로 밀어붙이고 북한이 핵실험으로 도발을 강행한다면 한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예상보다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금리 인상은 가뜩이나 침체된 국내 경기에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출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연간 8조 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한계가구의 금융부채가 25조 원 급증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연준이 15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 한국과 미국 간 기준금리 차이는 인상폭만큼 좁혀진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빨라지면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금융시장에서 선진국 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우려도 제기된다. 이로 인해 신흥국 경제가 위축되면 최근 회복세를 보이며 한국 경제 회복의 한 가닥 희망으로 꼽히고 있던 수출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우려도 한국 경제에 닥칠 악재 가운데 하나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 환율보고서를 통해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 이상이고,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이며, 통화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 개입을 반복적으로 단행한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 내 조달시장 진입 금지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압박 등을 받을 수 있다.
이두원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에 대해서는 ‘우리는 중국과 다르다’는 것을 강하게 이야기하며 대한국 무역이 양국 모두에 득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강하게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 제조업 업체 50% 이상 문 닫을 판”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 강도는 더 커지고 있다. 9일 랴오닝(遼寧) 성 다롄(大連)에 진출했던 한 국내 업체는 시 소방국의 사전 귀띔을 받고 준비를 했지만 17가지에 달하는 지적을 받아 50만 위안의 벌금과 함께 조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사장 사무실 면적이 50m²가 넘어 출입문이 2개 이상이어야 하는데 1개밖에 없다는 게 이유였다. 현지 한국 업체의 한 관계자는 “조업정지 3개월이면 대부분 부도를 맞는다”며 “이런 식이면 중국에 진출한 한국 제조업체 50% 이상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이 같은 악재들에 국내외 기관들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탄핵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평가하면서도 “사드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 등으로 한국 경제가 올해 기존 성장률 전망치(2.5%) 이상의 성장을 달성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이날 사드 보복을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5가지 위험 요소 ‘STORM(폭풍)’ 중 하나로 꼽았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북한이 수차례 핵실험을 했지만 대선 정국에서 무력 도발을 감행한다면 지정학적 정세에 충격이 있을 것”이라며 “북한의 도발 카드를 예상하고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희창 ramblas@donga.com·천호성 / 정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