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종석 기자
그제 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 리그(세리에A) 팀 칼리아리가 북한 청소년 대표팀 공격수 출신인 한광성과 입단 계약한 사실을 발표했다. 올해 19세인 한광성은 4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연습 경기를 뛰고 있던 3명의 유학파 중 한 명이다. 유럽 축구 4대 리그의 하나인 세리에A 구단이 탐을 낼 정도로 그동안 잘 성장한 모양이다.
그런데 칼리아리의 한광성 영입에 대해 이탈리아 내에선 반대 의견이 있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외국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임금이 북한의 외화벌이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칼리아리는 일단 한광성을 영입했다. 계약금도 급여 지급도 계약 이후의 일이다. 아직 첫 월급도 안 줬는데 외화벌이 어쩌고 하는 건 나중 일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자 일본이 독자적인 제재를 했다. 북한 국적자의 입국을 금지했다. 북한 선박의 입항도 막았다. 인도적 목적의 선박도 못 들어오게 했다. 항해 중 북한에 잠시 들른 적 있는 제3국 선박까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인도적 목적을 제외하고는 북한으로의 송금도 금지했다. 막을 수 있는 건 다 막아버렸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으로 열이 뻗칠 대로 뻗친 일본도 막지 않은 게 있다. 북한 여자 축구대표팀이다. 일본은 지난해 2월 29일∼3월 9일 오사카에서 열린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축구 아시아 최종예선에 북한의 참가를 허용했다. 당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꾸린 1000명가량의 응원단은 인공기를 흔들면서 북한을 응원하기도 했다. 일본의 대북 제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일본은 지난달 열린 삿포로 겨울아시아경기대회에 북한이 참가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무대를 스포츠로만 한정해 놓고 보면 북한도 그렇게 막무가내는 아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최종예선이 다음 달 평양에서 열린다. 북한축구협회가 이 대회 조별리그 B조 경기를 통째로 유치했다. 그런데 한국이 조별리그 추점에서 B조에 속하는 바람에 북한과 맞붙게 됐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A매치(국가대표팀 간의 경기) 운영 규정에 따라 경기 시작에 앞서 양국 국기가 그라운드에 입장하고, 양국 국가도 연주해야 한다. 평양 한복판에서, 그것도 북한 주민이 관중석에서 지켜보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북한이 허용할까.
북한이 태극기 입장과 애국가 연주 둘 다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AFC에 전달했다고 한다.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면 그랬을 리 없지 싶다. 북한을 대변하는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사흘 전 보도를 보면 북한은 이번 대회 관전을 위한 한국 응원단의 방북도 허용할 의사가 있어 보인다.
스포츠 기자의 헛꿈일지는 몰라도 ‘불량 국가’ 북한을 어떻게든 좀 바꿔보겠다고 한다면, 우선은 스포츠가 답일 수도 있겠다 싶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