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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성열]탄핵 이후, 행복의 조건

입력 | 2017-03-13 03:00:00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헌법재판소가 현직 대통령의 거취에 관해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많은 국민이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에 참석하여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다. 비록 직접 집회에 참석하지는 않았어도 거의 모든 국민이 큰 관심을 갖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지켜봤다. 이 과정에서 가족 간에 불화가 일어나기도 했고, 화목했던 동료들끼리 주먹다짐을 할 정도로 큰 감정의 골이 생기기도 했다. 그만큼 현직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사안에 온 국민이 감정적으로 크게 몰입돼 있었다.

감정의 골을 메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솔직히 표현해야 한다. 물론 자신이 원했던 결과가 나왔다면 일단 기쁠 것이다. 자신과 의견을 같이했던 사람들과 함께 이 기쁨을 충분히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감정은 ‘나’를 주어로 시작할 때 훨씬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나는 (바랐던 결과가 나와) 기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나’를 주어로 이야기해야만 상대방에 대해 조소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 무엇보다 자신이 원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느끼는 참담함과 열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들도 ‘나’를 주어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나는 지금 너무나 황당하다” “나는 지금 너무 화가 난다” “나는 지금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한 언젠가는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억눌린 감정이 외부로 표출되면 과격한 폭력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억눌린 감정이 내부로 향하면 심한 우울과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지게 된다. 심한 경우 이 두 가지 상반된 상태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함께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간관계는 상대가 있는 것이고,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관계의 기본이다. 특히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고 동감하는 것이 대인관계의 기본이다. 이를 위해서는 ‘너’를 주어로 상대의 감정을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너는 지금 나라의 미래가 걱정되는구나” 또는 “너는 지금 너무나 속상하구나” 등의 말로 상대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 즉 상대방의 감정에 맞장구를 쳐줘야 한다. 상대방의 말의 표면에 나타나 있는 내용보다 그 밑에 깔려 있는 감정을 알아주면 더욱 효과적이다.

‘기쁨은 함께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함께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다. 감정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함께한다는 것은 상대가 있다는 뜻이다. ‘나’의 감정만이 아니라 ‘너’의 감정도 배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상대가 나와 같은 기쁜 감정일 때는 표현하고 함께 기뻐하면 기쁨이 배가 된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와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너’의 감정을 우선시하고 배려하고 공감해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기쁘다고 슬퍼하는 사람 앞에서 웃고 떠드는 것은 예의가 없는 것이고, 자기중심적인 미성숙한 행동이다.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왕이라는 칭송을 받게 된 이유는 신에게 지혜를 간구하고 받았기 때문이다. 솔로몬 왕이 얻은 지혜의 히브리 원어는 ‘듣는 마음’이다. 그는 진짜 어머니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현명한 재판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