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자 A21면 “美 대학들 ‘흑인 탄압 과거 반성합니다’” 기사와 A25면 하루키의 ‘난징대학살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기사를 보며 깊은 울림을 느꼈다.
미국의 대학들이 과거 흑인 노예제도를 옹호한 사실을 시인하면서 반성한다고 발표했다. 하버드대, 예일대, 컬럼비아대 등 노예제 유지에 깊이 관여했던 대학들이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신작을 통해 난징대학살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우익들의 공격을 받았는데 하루키는 소신을 접지 않았다. 그는 “제대로 된 사죄는 상대국이 ‘됐다’고 할 때까지”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 그 말의 진정성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난징 학살은 인정하지만 피해자 수는 확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 주장의 속내는 무엇인가. 잘못은 있지만 희생된 사람이 많지 않음을 강조하고 잘못의 크기를 줄여 보려는 계산된 속셈이다. 사람의 목숨은 수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일본은 지금이라도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흑인 노예제도를 옹호한 것을 진심으로 사죄한 미국 대학들처럼.
김정숙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