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주연 연출을 인터뷰하며 지금까지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96년 극단 백수광부에 입단한 때로부터 치면 연극판에 발을 담근지 벌써 20년. 이제는 인정받은 과거와 미지의 미래 사이에서 뭔가 변화를 모색할 때가 된 듯하다. 그 또한 경계를 뛰어넘는 일이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여기서 ‘그’는 류주연 연출가(46)다. 손잡이 없는 찻잔 같은 그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고민을 했다. 그러나 3월 13일 동아일보에서 그를 만나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으며 금방 깨달았다. 어떤 키워드를 사용하면 류주연을 ‘근사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더욱이 그 키워드는 내가 아니라 본인이 시사한 것이다. 그 키워드가 무엇인지는 나중에 밝히기로 하고, 우선 본인이 생각하는 대표 연출작을 들어보자.
“‘경남 창녕군 길곡면’ ‘기묘여행’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다. 전에는 내가 연출인가, 연출을 할 수 있나, 라는 상실감 같은 게 있었는데 ‘경남 창녕군 길곡면’을 계기로 ‘뭔가 알 거 같다’는 생각을 강력하게 하게 됐다. ‘기묘여행’은 또래 배우 2인(이주원, 김선영)이 호흡을 잘 맞춰 소극장에서 성공한 ‘경남 창녕군 길곡면’과는 달리, 선배들과 함께 비교적 규모가 큰 무대에서 공연을 했는데도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내 능력에 대한 의심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대본만 보고 서울문화재단에 지원신청을 했는데 나중에 이 작품이 국내에서 여러 번 공연된 것을 알고 놀랐다. 그런 사실조차 몰랐던 내 불찰이 크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걸 보면서 ‘나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경남 창녕군 길곡면’의 한 장면. 아이가 태어나면 기를 여력이 있는지 이런저런 지출항목에 대해 싸우기도 하고 합의도 해가며 가계부를 다시 써보는 부부의 모습. 매우 웃기는 동시에 매우 슬픈 장면이다. 이 작품의 고갱이가 바로 이 지점에 응축돼 있다고 느꼈다. 왼쪽이 배우 김선영, 오른쪽이 이주원. 이 작품의 대체불가능한 명콤비다. 극단 산수유 제공
크뢰츠는 “주로 농촌이나 소시민의 가정환경에서 발견한 일상적이면서도 동시에 잔인한 사건이나 상황, 행동양식을 객관적으로 날카롭게 잘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 작품이 딱 그런 작품이고, 류주연의 번안은 자연스럽고 맛이 있다. 이 작품은 결혼 3년 차의 젊은 부부 이야기다. 어느 날 부인이 임신을 하게 되면서 너무 적은 월급 때문에 아직은 아기를 가질 수 없으니 지우라고 윽박지르는 남편과 그럴 수 없다고 버티는 아내의 갈등이 기둥 줄거리다(갈등 구조는 극의 후반부에야 나타나며 그 전에는 오히려 평범한 부부의 소소한 즐거움이 극을 이끌어간다. 그래서 후반부의 갈등이 조금 튀는 느낌이 드는 지도 모르겠으나).
이 작품에 대해 류주연은 어떤 인터뷰에서 “막연히 결혼하고 임신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인식하면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연극에 담아냈다”고 했는데, 만약 그렇다면 그는 실패했다. 왜냐하면 이 연극이 성공한 것은 절대로 그런 교훈적인 메시지 때문이 아니라 아이 하나조차 마음껏 낳을 수 없는 소시민의 현실과 고통이라는, 오히려 전혀 교훈적이지 않은 메시지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부부가 아이 기를 돈을 마련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기 위해 웬만한 지출은 전부 안하기로 하고, 울고 웃어가며 계산해보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동시에 가장 잔인한 장면이기도 해서, 나는 이 지점이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유행가 가사를 떠올렸다면 지적 수준을 의심받으려나. 또 하나. 원작에 없는 시계의 초침 소리를 이용한 장면 전환과 예고 효과는 독창적이었다.
‘기묘여행’(2010년, 2012년 공연)은 일본 작가 고조 도시노부의 작품으로 딸을 살해당한 피해자 부모와 딸을 살해한 가해자의 부모가 함께 교도소로 가해자(사형수)를 면회 가는 기묘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류주연은 이 작품에 대해 “소재만 특이할 뿐 웃기는 연극”이라고 말한 적도 있으나 요즘 유행어로 치면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상당히 웃프다.
‘12인의 성난 사람들’(2016년 공연)은 미국 작가 레지널드 로즈의 작품으로 1950년대 TV드라마와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다.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는 18세 소년을 둘러싼 배심원 12명의 진실공방을 그렸다.
그는 ‘기묘여행’으로 2010년 제47회 동아연극상 유인촌 신인연출상을, ‘12인의 성난 사람들’로 올해 제4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연극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주인공은 절실하다고 느끼고, 관객들은 기묘하다고 느낀다. 그 차이가 ‘기묘여행’의 묘미이기도 하고, 웃음을 촉발하는 틈새이기도 하다. 딸을 살해당한 피해자 부모와 딸을 살해한 가해자 부모가 한 차에 타고 가해자가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로 가는 장면. 2012년 일본 동경에서 공연했던 모습이다. 극단 산수유 제공
그의 대표작을 길게 소개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류주연을 설명할 키워드와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코멘트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키워드는 바로 ‘경계선’이다. 류주연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경계선’에서 고민하는 연출가다.
“해외 번역극은 인정받은 작품만 들어온다. 안정감이 있다. 작품의 힘을 빌어서 연출할 수 있다. 그런데 창작극은 실력이 있어야 한다. 창작극을 연출하려면 어딘가를 메워야 하고, 뭔가를 발굴해야 한다. 내가 과연 이 작품을 살릴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있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는 ‘잘못해도 중간은 갈 수 있는’ 번역극을 선호했다는 말이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좋은 작품만 하는 연출가를 꿈꾼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좋은 작품’이란 검증된 작품이고, 검증된 작품이란 외국 번역극일 확률이 높다.
그는 좋은 창작극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좋은 작가란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극히 소수다. 그렇지만 작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좋은 작가를 만들어 낼만한 사회적 분위기가 안 돼 있음을 탓해야 한다.”
그러던 그가 7월에 국립극단을 이끌고 배삼식 극작가의 ‘1945년’이라는 작품을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린다. 격동의 세월을 보내면서 차례로 3명의 남자와 살게 되는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다룬다고 한다. 언뜻 1992년에 나왔던 영화 ‘명자 아키코 쏘냐’를 연상시킨다. 대본은 3월 중순 경에 나올 예정이라니 디테일은 좀더 시간이 있어야 알 것 같다.
‘1945년’은 그가 처음으로 연출하는 창작극은 아니다. 그러나 번역극의 경계선을 넘는 게 두려웠던 그가 ‘연출하고 싶은 창작극’을 만났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두 번째 경계선은 소극장과 대극장이다. 그는 지금까지 소극장 연극에 주력해 왔고, 소극장에서 장기를 발휘했다. 그는 2012년 남산 예술센터에서 한현주 작 ‘878미터의 봄’이라는작품을 연출한 적이 있다(878미터는 석탄을 캐는 갱도의 깊이다). 그에게는 사실상 첫 번째 대극장 무대였는데 그의 말을 빌자면 “완전히 깨졌다.” 실패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같은 해 경기도립극단과 함께 제작해서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 올린 ‘양철지붕’(고재귀 작)은 나름 성공을 거뒀다. 양철지붕은 공사판의 ‘함바집’을 뜻한다. 그 지붕 밑에서 살고 있는, 폭력을 행사하고 폭력에 노출된 인간군상을 그리고 있다.
“소극장에만 익숙했던 나에게 ‘양철지붕’은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사실 대극장에서는 심장이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양철지붕’에서 그런 걸 경험했다. 고선웅 연출의 도움을 받았다. 최초로 대극장 연극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7월에 공연할 ‘1945년’은 그가 창작극과 대극장 트라우마를 동시에 누그러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일 듯하다.
세 번째 경계선은 연출가와 배우 사이에 그어져 있다.
“예술가에게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배우들이 연습하는 걸 보며 ‘저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 대신 이렇게 하라’는 제안을 하는 것도 힘들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메워나가는데, 사실은 창의력과 상상력이 부족한 것을 민주적인 극단 운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상당히 박하게 평가했다. 이유는 앞서 얘기했듯 창의력과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그는 그 이유를 교육 속에서 찾는다.
“초등학교 때는 TV에 빠져 살았고, 중고등학교 때는 다른 생각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제도권 교육만 충실히 받았는데 무슨 창의력과 상상력이 생기겠나. 내가 만약 음악과 미술을 택했다면 반드시 실패했을 것이다. 그나마 연극은 여러 명이 하기에 살아남은 것 같다. 만약 연극을 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자고 했다면 유치한 것만 생산했을지도 모른다. 주변에 창의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말을 취합하면 큰 실패는 안 한다.”
그러나 나는 가장 뚜렷한 경계선은 류주연 자신 속에 있다고 본다.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도 부모가 반대하자 곧바로 접었다. 집에서 반대를 했어도 정말로 꿈이 있었다면 대학극회라도 들어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끊임없이 자신의 자질과 가능성을 의심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대학에서는 학생운동도 꽤 했다. 내가 운동권이 된 것은 나를 지배했던 제도에 대한 배신감에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알아온 것과는 다른 시각에서 만들어지는 정보들에 빠졌다. 그러나 속마음은 여전히 연극을 향해 있었다.”
현실과 꿈 사이의 경계에서 늘 고민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연극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졸업 후 사설 연기학원에 등록하면서 연극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 루트는 연극영화과와 대학극회 출신이 넘치는 연극판에서 그리 자랑할 만한 커리어는 못된다. 그러나 대학시절에 경계선을 넘지 못했던 그로서는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는 “그렇게 멀리 돌아온 것이 오히려 지금은 장점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장점이란 그의 표현을 빌자면 “조심조심, 살금살금 일을 하기 때문에 디테일이 살아있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그는 주변에서 자신을 “도제로 연출이 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도 훈장으로 여긴다. 밑바닥에서 박박 기어 올라와 연출이 됐다는 뜻이다. 요즘은 외국이나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바로 연출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자기 같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류주연은 왜 경계선에서 서성댔거나 아직도 서성대고 있는가. 그의 말을 빌자면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중간의 회색지대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 이쪽인지 저쪽인지 선택을 못하고 갈등만 할 때가 많다고 했다. 마치 ‘기묘여행’에서 복수를 꿈꾸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땀만 뻘뻘 흘리는 피해자의 아버지처럼. 그런 점에서 그가 대표작으로 꼽은 세 작품과 ‘양철지붕’은 그가 경계선을 넘는데 도움을 준 소중한 인연들이다.
‘양철지붕’에서 비가 오자 노동자들이 일을 공치고 무료하게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장면. 류주연 연출은 이 작품을 통해 열악하고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폭력의 악순환에 대한 경고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로서는 소극장이 아니라 대극장 무대에서도 꽤 성공을 거뒀다는 의미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경기도립극단 제공
하지만, 그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서는 경계선에서 서성댄 적도, 자신감 없는 태도로 우물쭈물한 적도 없다. 직설적이고 단호했다(그도 블랙리스트에 들어있다).
“민주주의는 표방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구성원이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이해, 더불어 ‘실천’이 있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국민이 달라져야 한다.”(문화뉴스, 2017년 3월)
그는 우리 시대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한번도 그랬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민중의 소리, 2016년 8월)거나, “민주주의 국가는 선포한다고 성립되는 게 아니라 구성원의 동의와 실천이 필요하다. 이번 작품으로 사회적 책임이 우리의 일상임을 확인했다”(이데일리 문화대상 수상 소감, 2017년 2월)는 말도 했다.
그래서 그는 검열에 저항하기 위해 지난해 젊은 연극인들이 진행했던 ‘권리장전 2016-검열각하’라는 연극제에 ‘금지된 장난’이라는 작품으로 참여했다. 공동창작이었다.
나는 류 연출의 그런 정서에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강하게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국민도 달라져야 한다’고 한 대목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물어봤다.
“민주주의 하면 흔히 제도를 말하는데, 내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얘기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실천해야 제대로 작동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 나오는 12명의 배심원 중에서 1명만이 무죄를 주장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삶만을 중시한 채 유죄를 주장한다. 우리 사회도 민주주의적 사고와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국민들의 성향이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준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실망했다고 죽든가, 산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래도 살아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류주연은 이성열 연출과 인연이 깊다. 그가 사설 연기학원에 다닐 때 졸업작품을 연출하러온 사람이 이성열 연출이었고, 그런 인연으로 이성열이 백수광부라는 극단을 만들 때 창단 멤버가 됐다. 그리고 3년간 배우로 일했다. 그런데 회의가 밀려왔다. 이게 내가 그토록 꿈꿨던 연극판인가. 연극판도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이성열은 그에게 공부를 권했다. 문예진흥원 공연예술아카데미에 연출전공으로 들어갔다. 29살에 비로소 연극을 제대로 배울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연극판을 다시 보게 됐다. 연극판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문제이고, 그런 인간은 어디에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연극판에 대한 자신의 기대가 너무 높았던 것이다. 그는 “나는 이성열 선생님의 제자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나를 동지라고 말해줘 감동을 먹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연극판에 대해 “약간 슬픈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인간은 계속해서 자아를 성찰하고, 반문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지금의 연극판은 그럴 준비가 안돼 있다는 것이다. 아니 준비가 안 된 게 아니라 준비를 안 하고 있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연극판에 관객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작품이 없다. 어디선가는 그런 작품도 무대에 올려야 한다”고 했다.
연극판은 변할 것인가. 그는 “심정적으로는 비관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관객을 고민하게 만드는 연극은 수입 걱정 없는 국립극단 등이 할 수 있는데 그런 극단은 앞으로 귀족화할 것이고,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연극은 예술이 아니라 오락화할 것이라는 걱정이다. 결국 일반 관객이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예술성이 있는 연극은 설 땅이 점점 좁아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는 요즘 극단이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새로운 극단이 문을 여는 것은 바로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가 2009년에 ‘산수유’라는 극단을 만들게 된 것도 이성열 연출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이성열 선생님은 극단이 없어지면 막 연극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했다. 극단은 연극판의 가장 기초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선생님은 연극계 전체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극단을 만든 것 같고, 나는 개인적인 이유로 극단을 만들었는데, 선생님의 그런 주문은 부담이 되면서도 사명감을 느끼게 만든다.”
‘개인적인 이유’란 본인은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배우로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연출밖에 할 게 없었다는 말이다.
산수유라는 이름도 이성열 연출이 선물했다. 산수유는 봄에 일찍 꽃을 피우니 좋고, 붉은 열매는 류 연출의 열정을 닮았고, 열매는 약재로도 쓰인다 하니 사회에 이로운 활동을 하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그에게 지금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웃기만 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리라.
류 연출은 요즘 새로운 경계선에서 고민하고 있다.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때는 꽤나 열심히 천착했으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몸과 공동창작에 대한 관심이다. 몸에 대한 관심은 ‘언어’의 대응개념으로서 몸 기호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고, 공동창작은 개인이 만드는 웰 메이드 텍스트를 보강한다는 의미가 있다. 물론 공동창작이라고 해도 그는 콘텐츠를 중시한다. 그가 몸과 공동창작을 어떤 작품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테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은 새로운 경계선을 뛰어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그가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그는 연극판의 앞날을 우울하게 바라보면서도 본인은 즐겁다고 말한다.
“세상에 대해 얘기하고, 사람에 대해 떠드는 직업이 좋다. 그런 일은 철학자나 심리학자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연극에는 그런 사람들의 일과는 달리 놀이가 들어간다. 나는 놀고 싶다. 노는 걸 좋아하는 한량기질이 있다. 나에게 고민을 요구하고, 놀고 싶은 욕구도 자극하는 최적화된 직업이 바로 연극이다.”
그는 “언제까지 연출을 하고 싶은가”라는 상투적인 질문에 “그런 생각은 없고 언제까지 살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고 했다. 조금 튀는 답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설명은 이렇다. “집안사람들이 모두 60을 넘기지 못하고 단명했다. 그래서 70까지는 살고 싶다.”
류주연은 여러 인터뷰에서 ‘귀 밑 3㎝ 두발 자유는 정말 자유였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귀 밑 3㎝ 내에서 자유롭게 머리를 자르라는 것은 자유일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동의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경계선을 한 발 짝 넘어섰다고 해서 정말로 경계선을 넘어선 것일까. 나는 그가 경계선을 훌쩍 넘어 전혀 새로운 작품에 싸움을 걸어보길 기대한다. 준비단계는 이미 지난 것 같으니.
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