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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속살]말 짧아진 안희정, 추상을 떨치다

입력 | 2017-03-14 20:48:00


‘말이 추상적이다. 어렵다. 장황하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받는 평가 중 하나다. 도올 김용옥 교수가 언론 인터뷰에서 고려대 철학과 제자인 안 지사를 향해 “자네 말은 이해가 잘 안 간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논란이 된 선한 의지 발언도 다소 장황한 화법이 촉발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런 안 지사가 최근에 많이 달라졌다. 14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보인 어법과 화법이 그런 평가를 받았다. 말은 짧아졌고, 표현도 간결해졌다. 그동안 강조했던 ‘민주주의자 안희정’, ‘30년 정당정치인’ 등과 같은 어구도 사라졌다.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공격 본능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같은 친노(친노무현) 출신으로 문 전 대표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안 지사가 아니었다. 마치 다른 당 후보와 싸우듯 날선 공방이 오갔다.

아래는 토론의 하이라이트 부분.

안희정(이하 안) “김종인 전 대표를 모셔와 4·13 총선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탈당하실 때 만류나 설득은 잘 안 하시더라”

문재인(이하 문) “경제민주화 함께 하려고 모셔왔는데, 그렇게 못돼 안타깝다. 하지만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식의 (김종인 전 대표) 방식엔 동의할 수 없다”

안 “문재인 리더십이 불안하다고 한다. 정치 입문 후에 당 대표까지 지내면서 손학규 김한길 박지원 안철수 이르기까지 모두 당 떠났다”

문 “아시다시피 민주당 혁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고 혁신 반대한 분들 당 떠난 것이다”
안 “김종인 대표까지 모셔왔으면서 저의 대연정 주장을 야박하게 말씀하신 거 보면 이해가 안 간다. 당내 통합도 효과적 리더십 발휘 못했는데, 대한민국 분열 갈등 어떻게 이끌겠나”

이런 변화는 안 지사가 캠프와 무한 소통하면서 나온 결과물이다. 특히 안 지사를 돕는 현역의원 모임인 ‘의원멘토단’의 역할이 컸다.

지난주 주말 안 지사는 ‘의원멘토단’ 소속 현역의원 약 10명과 둘러앉았다. 본격적인 TV 토론을 앞두고 메시지 기조를 가다듬기 위해서다.

안 지사는 “한분 한분씩 편하게 말씀해주세요”라며 끝장토론을 유도했다. 고성이 오갈 정도의 격론이 2시간가량 펼쳐졌다. A의원은 “기존의 안희정으로는 안 된다. 벙벙하지 않게 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B의원은 “14일 토론회가 마지막 반전 기회다. 문 전 대표를 공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지사는 때론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의원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받아 적었다.

격론이 끝나고 안 지사는 “오늘 나온 이야기들을 종합해 조금 더 품격 있게 정리하겠다”며 회의를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의원들과 토론에서 나온 결과물을 100% 가까이 수용한 것이다. ‘대개혁, 대연정, 대통합’과 같은 슬로건과 이날 토론회 기조와 논리가 이 자리에서 틀이 잡힌 것으로 알려진다.

이날 회의에 처음 참석한 손학규계 정춘숙 의원은 이런 광경에 다소 놀란 것으로 전해졌다. 정 의원은 이날 안 지사를 향해 돌직구 질문을 날린 뒤, 이에 차분히 대응하는 안 지사의 소통능력을 보며 지지 의사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지사의 정치적 멘토는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이다. 바로 소통능력 때문이다. 그는 ‘안바마(안희정+오바마)라는 별명을 가장 아낀다고 알려졌다. 참모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자기 변화에 나선 안 지사가 반전의 동력을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유근형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