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정서와 상호작용이 삶의 원천인 아이들이 있다. 부모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해서, 혹은 너무 많이 받아서, 혹은 동생에게 사랑을 뺏겨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일부 그런 아이도 있지만, 성향 자체가 다른 사람이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너무 중요한 아이들이다.
물론 그런 에너지는 누구에게나 좋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좋은 정도가 아니라 그게 없으면 죽음처럼 불편하다. 그것이 있어야만 삶이 행복하다. 눈이 마주치면 선생님이 환하게 웃어 주어야 하고, 아이가 부르면 선생님이 반색하며 “어머, 우리 민정이 왜?” 해 줘야 한다. 어쩌다 무표정하게 대답하면 아이는 금세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 된다.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웃으면서 환하게 대해 주지 않으면 정서적으로 힘들어한다. 외롭고 고독하다고 느낀다.
아이가 왜 이렇게 성취에 민감한 걸까. 아니다. 아이가 민감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유치원만 들어가도 아이들의 성취에 지나치게 과민해진다. 이 아이들은 그것을 읽는 데 민감한 것이다. 이럴 때 아주 어린 아이는 부모나 선생님이 ‘나를 미워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는 ‘미워해’까지는 아니지만, 부모가 실제 그렇지 않아도 ‘우리 부모는 나를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느낀다.
‘아이가 왜 이렇게 예민할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도 재능이다. 아주 민감하게 다른 사람의 표정을 읽고, 분위기도 파악하고, 눈치도 볼 줄 아는 것은, ‘적당하면’ 너무나 큰 재능이다. 사회성이 굉장히 좋은 것이다. 문제는 ‘적당히’를 넘어서면 본인도, 그 주변 사람도 힘들어진다는 데 있다.
이런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성향을 잘 파악해서 적절하게 지도해 주어야 한다. 교사라면 처음이 중요하다. 아이가 그런 성향인 것 같다면 한 번을 보더라도 화끈한 반응을 보여 줘야 한다. 지도하는 아이가 많아 그 아이에게만 특별한 반응을 해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잘 안다. 아이와 일대일로 있게 되는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아이가 “선생님∼” 하고 다가오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민정이 왔구나” 하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볼을 만져 주고, 꽉 안아주기도 한다. 아이에게 나는 너한테 호감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초반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채워서 신뢰관계를 단단히 맺은 다음, 다정하게 “선생님이 바쁠 때는 못 안아 주기도 해. 속상해하지 마”라고 살짝 말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도 “언제나 너를 사랑해. 그런데 바쁠 때는 네가 부를 때 한 번에 못 올 수도 있어. 대답을 못 할 수도 있어”라고 이야기해 준다. 상황을 오해하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자꾸 가르쳐 줘야 한다. 그래야 상황에 따른 ‘사회적 인지’가 생겨난다.
아이가 관심을 요구하는 것을 문제 행동으로 보고 무관심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훈계로 가르치려 해서도 안 된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정서적 긍정에너지다. 무관심은 원하는 것이 충족이 되지 않아, 훈계는 정서적이 아닌 인지적인 것이라 아이의 관심 받고 싶어 하는 행동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이 아이들을 지도할 때는 반드시 정서적인 것을 먼저 채워 줘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