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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찾아 떠났다가… 달리는 열차 안에서 바닷바람을 만났다

입력 | 2017-03-16 03:00:00

[섈 위 트립? 기자, 여행을 떠나다]일본 시코쿠 2박3일 여행기




도사쿠로시오 선을 운행하는 한 칸짜리 열차에 오르면 태평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철길이 30분 가까이 이어진다. 아키=박창규 기자 kyu@donga.com


《 별다른 기대 없이 찾았는데 큰 감동을 주는 여행지가 있습니다. 유명하지 않아 더 매력적인 곳도 있습니다.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들이 발품을 팔며 직접 찾아본 여행지를 독자들에게 공개합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소개합니다. 》




에도시대 정원을 대표하는 리쓰린 공원. 다카마쓰 중심부에 있다. 다카마쓰=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제대로 된 우동 한 그릇 먹고 싶다.’

시작은 우동이었다. 깔끔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 생각이 간절했다. 혼자 먹더라도 동네 프랜차이즈 식당보다는 구색을 갖춘 곳에 가고 싶었다.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주 무대로 삼고 활동하는 맛집 고수들은 저마다의 베스트 식당을 안내했다. 사이버공간을 헤집고 다니길 수십 분. 진정한 우동 맛집은 대한해협을 건너야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괜한 오기가 발동했다. 비행기표 검색에 나섰다. 우동 한 그릇 먹으러 일본에 다녀왔다는 말, 나라고 못할 건 없지 않은가. 어디가 좋을지 둘러봤다. 고민하는 내게 맛집 고수들은 이렇게 속삭였다. “카스텔라는 나가사키(長崎), 부타돈(돼지고기덮밥)은 오비히로(帶廣)인 것처럼 우동은 당연히 다카마쓰(高松)”라고.

○ 우동의 도시 다카마쓰

‘다카마쓰?’ 처음 듣는 도시였다. 가가와(香川) 현의 현청 소재지로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4개의 주요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四國)에 있다고 했다. 검색해보니 일본인에게 매우 유명한 곳이란다. 일본에서 가장 대표적인 음식인 사누키 우동이 바로 가가와 현에서 탄생했다는 것. 사누키는 가가와 현의 옛 이름이다.

역설적이지만 한국인을 위한 정보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 더할 나위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여행지에서 한창 경치 감상에 빠져있다가 뒤에서 한국말이 들려오면 당황하곤 했는데 여기선 적어도 그런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왕복 비행기표를 끊는 데에는 그리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저비용항공사(LCC) 에어서울이 지난해부터 다카마쓰에 새로 취항하면서 가격대를 다소 낮게 책정한 듯했다. 비교적 싼 가격에 숙소 예약을 끝내고 JR시코쿠 레일패스도 구매했다.

2월 27일. 1시간 30분 걸려 다카마쓰 공항에 도착했다. 세관을 통과해 입국장에 들어서자 진한 우동 국물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안내데스크에서는 ‘우동 여권’도 나눠줬다. 유명한 우동집에 들를 때마다 기념 스탬프를 찍는 용도다. 편의점 옆에는 따뜻한 우동 국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까지…. ‘우동의 도시’가 빈말이 아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다카마쓰에서는 어떤 식당에서든 기본 이상의 우동 맛을 즐길 수 있었다. JR 다카마쓰 역 근처에 위치한 셀프우동집의 320엔짜리 붓가케 우동에서 후루바바 초의 50년 전통식당에서 만난 1000엔(약 1만 원)짜리 샤부샤부 우동에 이르기까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우동 맛을 보기 위해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일본 혼슈 서부와 규슈, 시코쿠에 에워싸인 바다)를 건너는 관광객이 적잖다는 말이 역시 거짓이 아니었다.

○ 단선 철길을 달리는 열차에서 본 태평양


시코쿠에는 가가와 외에도 3개의 현이 더 있다. 고치(高知) 현은 일본인에게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일본 막부 체제를 종식시키고 근대화를 이끈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출생지가 바로 이곳이다.

이튿날 아침, 고치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고치까지는 약 2시간 40분. 단선 철길을 빠르게 내달리던 열차가 평야 지대로 접어들자 안내방송이 나왔다. ‘다음 역은 고멘(後免) 역이니 도사쿠로시오 철도를 운행하는 열차로 갈아탈 승객은 이번 역에서 내리라’고 했다.

‘역 이름이 고멘이라고?’ 미안하다는 뜻의 ‘고멘’과 음이 같을 뿐일 테지만 신기한 느낌에 고멘 역에서 내렸다. 잠깐 둘러보고 다음 열차를 탈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반대편에서 오는 한 칸짜리 열차. 희한하게도 한쪽 면이 유리창 없는 발코니처럼 뻥 뚫려있었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바람을 맞으며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도록 특수 제작한 열차였다. ‘이건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열차에 올라탔다.

고치 현 동쪽의 나하리(奈半利)라는 곳까지 운행하는 이 열차는 철길이 해안을 따라 놓여있었다. 10여 분쯤 달렸을까, 눈앞에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약 30m 거리에 바다가 있었다. 연근해가 아닌 진짜 태평양이었다. 유리창을 통해 한 번 걸러진 풍경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장관이었다.

우동을 찾아 시작한 2박 3일간의 여행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수십 m 아래 에메랄드 빛 계곡이 장관이었던 오보케(大步危), 단선 철길을 달리는 차량 뒤편에서 해지는 풍경을 바라봤던 고토덴(琴電) 열차, 시골집 담장 옆으로 유채꽃이 활짝 피었던 붓소잔((불,필)生山) 등 충동적으로 찾아 나섰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곳들이다.

올봄 다카마쓰와 시코쿠 여행을 고려 중이라면 일본에서 꼭 사야 한다는 화장품이나 파스 같은 구매 리스트는 접어두길. 노면전차부터 사설철도, JR까지 모두 마음대로 탈 수 있는 JR시코쿠 레일패스 한 장 들고 발길 가는 대로 돌아다니길 권한다. 화려하지 않고 순박한, 그래서 더 오래 남을 풍경을 잔뜩 눈에 담고 올 수 있을 테니….

시코쿠=박창규 기자 k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