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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의 사회탐구]비관주의자 대통령을 기다린다

입력 | 2017-03-16 03:00:00


정성희 논설위원

변수와 우연이 교차하는 우리 삶에서 확실한 게 있을까. 확실한 건 불확실하다는 것뿐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확실함을 추구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런 사람이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 기각을 확신한 나머지 삼성동 사저로의 이사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근혜의 이런 낙관주의적 자기 확신은 국민을 놀라게 했지만 스스로도 파멸로 이끌었다.

믿고 싶은 것만 믿은 박근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고 나서 내 결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만 선택하는 인지적 오류를 말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향을 갖고 있다.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을 경우 그 옷을 사야 할 이유는 수십 가지이고 빈약한 주머니 사정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어떤 정치인이나 연예인을 좋아하게 되면 그에 대한 부정적인 사실은 무시하거나 간과하기도 한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가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한 것이나 공자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게 앎(知)이다”라고 한 건 얼마나 대단한 통찰인가. 자신을 객관화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나아가 심리학자들은 자신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능력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왜 잘못된 확신을 갖는 걸까. 심리학은 그 첫 번째 이유를 어떤 것을 알지 못한다는 느낌이 불쾌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외국어를 들을 때의 느낌이라면 비유가 될까. 대신 사람이든 상황이든 무언가를 안다는 느낌은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둘째, 사람은 누구나 틀리기 싫어한다. 특히 자존심이 강할수록 자신에게 오류가 있다는 걸 인정하기 어렵다. 독일 인류학자 폴커 조머는 “선입견은 사실에 접근하는 걸 철저히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존심 강한 박 전 대통령은 이런 심리적 오류에 빠져 객관적 사실관계를 놓친 게 아닐까.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이런 대통령의 성격을 간파하고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정보만 올려 확증편향을 가속시켰다. 국민의 80%가 탄핵이 인용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는 여론조사에도 불구하고 빅데이터 분석 결과 탄핵이 기각될 것이라고 보고한 측근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도록 사람을 훈련하는 게 교육이고 그 훈련이 잘된 사람이 국가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헤겔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는 이성이 자기를 실현하는 과정이고 대통령은 국가 이성의 최고봉이다. 대통령의 객관화 능력과 건전한 판단에 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존망이 걸려 있다. 일례로 북한 핵미사일은 미국을 겨냥한 협상용이라는 믿음도 편견일 수 있다. 일부 국민은 이렇게 믿을 수 있으나 대통령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비를 해야 한다. 만일 북이 핵을 쏘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통치자의 자기 확신은 위험

5월 9일이 대선 날짜로 확정되면서 본격적인 대선가도가 펼쳐진다. 정말 잘 뽑아야 한다. 박근혜 트라우마를 겪은 국민으로서 난 자기 확신이 강한 낙관주의자보다는 비관주의자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일이 잘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모든 실패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최악에 대비할 계획을 세우고 반대자 설득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