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日육상명문고 보낸 김재룡 한국전력 감독
아버지, 1992년 국내코스 첫 2시간10분 돌파… 영훈군, 중1때 학교 운동부원들과 겨뤄 3위
“공부-운동 병행 기본기-스피드 다져놓고 풀코스는 대학 졸업한 다음에 뛰게 할 것”

한국 마라톤 황금 세대의 한 명이었던 김재룡 한국전력 감독(왼쪽)이 15일 아들 영훈 군과 함께 서울체고 운동장에서 달리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재룡 한국전력 마라톤 감독(51)이자 대한육상연맹 마라톤위원장은 국내 코스 최초로 2시간10분 벽을 깬 주인공이다. 처음 출전한 1987년 동아마라톤에서 4위를 했던 김 감독은 1991년 황영조(47)를 제치고 우승한 데 이어 1992년 2시간9분30초의 당시 국내 코스 최고기록으로 동아마라톤 2연패를 달성했다. 한국 마라톤 사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높은 순위(4위·1993년 슈투트가르트)를 기록한 선수도 그였다.
김 감독은 최근 둘째 아들 영훈 군(16)을 일본 나가사키 진제이(鎭西)고에 입학시켰다. 지난달 열린 도쿄 마라톤에서 2시간8분22초의 기록으로 일본 1위(전체 8위)를 차지한 이노우에 히로토(24)를 배출한 학교다.
애초 김 감독은 자식들에게 운동, 특히 육상을 시킬 생각이 없었다.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아들은 달리기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야구, 농구, 럭비부가 있는 중학교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했는데 1학년 때 교내 단축마라톤에서 운동부 선수들과 함께 뛰어 3위를 했어요. 그래도 운동은 안 시키려 했는데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이 뛰는 걸 보더니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주위에서 ‘자식이 소질 있는데 당신 같은 사람마저 육상을 안 시키면 어떡하느냐’는 말을 듣던 터라 마음을 바꿔 체육중학교로 전학을 시켰습니다.”
영훈 군의 현재 롤 모델은 ‘공무원 마라토너’로 유명한 일본의 가와우치 유키(30)다. 그는 엘리트 선수가 아닌데도 2시간8분14초의 기록을 갖고 있다. 영훈 군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육상을 접하면서 마라토너의 꿈을 가지게 됐다. 아버지 말씀대로 공부도, 운동도 잘하고 싶다. 달리는 게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풀코스를 뛰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스피드와 기본기를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유다. 김 감독은 “눈앞의 성적 때문에 몸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별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 그렇다고 한 얘기를 또 하자니 잔소리만 늘어놓는 것 같아 아예 영훈이를 ‘실험모델’로 삼는 것이다(웃음). 아들이 마라토너로 성공하면 내 주장에도 힘이 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영훈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풀코스를 뛰게 되면 그 첫 무대는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대회가 될 겁니다. 언젠가 ‘국내 첫 동아마라톤 부자(父子) 우승’이 이뤄지는 꿈, 생각만 해도 뿌듯합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