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홍콩에서 한국의 대통령 격인 행정장관을 뽑는 선거가 치러진다. 1997년 중국이 홍콩을 편입해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를 도입한 지 꼭 20년 만이다. 여기에 2014년 민주화 시위 ‘우산혁명’ 이후 홍콩의 민주화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아 이번 선거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7월 취임할 임기 5년의 새 행정장관을 뽑는 이번 선거에는 존 창(曾俊華) 전 재정사장(경제장관 격), 우쿽힝(胡國興) 전 고등법원 판사, 레지나 입(葉劉淑儀) 신민당 주석 등이 출마했다.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사람은 캐리 람(林鄭月娥·60) 전 정무사장(총리 격)이다. 간선제인데다 중국이 그를 ‘낙점’한 상태라 이변이 없는 한 당선 가능성이 높다.
▲ 출마 계획을 밝히는 람
○거친 싸움꾼
람은 1957년 홍콩 서민 거주지 완차이의 저소득층 가정에서 5남매 중 4번째로 태어났다.중국 저장성 출신인 부모는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집안 형편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일곱 식구가 다른 가족과 조그만 아파트를 나눠 써야 할 정도였다.
람은 198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연수를 떠나 수학자 남편 시우포 람을 만나 1984년 결혼했다. 둘은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남편과 두 아들은 모두 영국 국적이다.
람은 귀국 후 행정청의 예산부, 재무부, 사회복지부 등을 거쳤다. 2007년 7월 홍콩 1대 행정장관 도날드 청은 50세의 람을 개발국장(장관 격)으로 발탁했다.
취임 첫 날 그는 홍콩섬과 카우룽 반도를 연결하는 페리 부두 철거 문제와 조우한다. 한때 홍콩 랜드마크였던 에딘버러 플레이스 페리 피어는 노후화가 심해 철거가 예정됐지만 환경론자들의 거센 반대로 공사가 지체되고 있었다.
○친중파
2012년 7월 취임한 3대 행정장관 렁춘잉(梁振英)은 람을 정무사장으로 발탁했다. 행정청 2인자가 돼서도 람의 스타일은 여전했다. 우산혁명이 발발한 2014년 10월 람은 우산혁명을 주도한 학생 대표들과 공개 토론을 벌이며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시위대 강경 진압도 주도했다. 그런 그에게 ‘철의 여인’ ‘홍콩판 마거릿 대처’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중국 수뇌부가 람을 차기 행정장관 후보로 여긴 결정적 계기였다.
올해 1월 그가 정무사장 직을 사퇴하고 “차기 행정장관에 입후보하겠다”고 밝힌 것도 베이징과의 사전조율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관측이 많다. 중국 권력서열 3위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이달 5일 홍콩 내 친중파 인사들을 만나 “람이 애국심을 분명히 보여줬고 풍부한 행정경험이 있다. 그는 중국이 지지하는 유일한 후보이며 공산당 중앙정치국의 만장일치 의견”이라고 강조했다.
○휴지와 지하철
친중 성향 외에도 일부 홍콩 시민들이 그를 우려하는 이유는 그의 비서민적 행보 때문이다. 람은 올해 1월 정무사장 사퇴 직후 기자들과 만나 “최근 화장실 휴지가 떨어져서 택시를 타고 옛 관저로 가서 휴지를 몇 통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정무사장 관저에서 나와 민간인 신분으로 살고 있었다.
물론 발언의 취지는 달랐다. 당초 그는 “며칠간 인생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계속 적응하고 배우고 있는 중”이라며 소소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했다. 하지만 소기의 목적과 달리 서민의 삶과 동떨어진 엘리트 공무원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한 셈이 됐다.
홍콩 누리꾼들은 이를 강력 비판했다. “편의점에서 휴지를 사면 되지 왜 관저 휴지를 가져와야 하느냐” “관저에서 살기 전에는 휴지를 한 번도 구입해본 적이 없느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휴지 게이트’라는 말까지 나왔다.
최근에는 지하철을 이용하려던 그가 회전식 개찰구를 지나가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다 수행원의 도움을 받고 간신히 개찰구를 통과하는 모습이 TV전파를 탔다. 람의 경쟁자 레지나 입 신민당 주석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미디어에 등장해 교통카드를 들고 “나는 (람과 달리) 교통카드의 정확한 사용법을 알고 있다”고 일격을 가했다.
▲ 행정장관 주요 후보를 비교한 언론 보도
○멀어져가는 일국양제
홍콩 시민은 행정장관을 직접 뽑을 수 없다. 시민들을 대리한 선거위원 1200명의 과반인 601표 이상을 얻어야 행정장관이 된다. 선거위원은 중국이 구성한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행정장관 후보자는 애국애항(愛國愛·중국과 홍콩을 사랑한다) 인사여야 한다”고 못박아놓고 있다. 누가 행정장관이 돼도 공산당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은 겉으로는 일국양제 외에도 ‘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린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 ‘높은 수준의 자치를 보장한다’는 ‘고도자치(高度自治)’ 3원칙을 내세웠다. 그러나 지난 20년 간 이 원칙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중국은 2011년 1989년 천안문 사태를 다루지 않는 ‘국민교육’ 과목을 홍콩 교과서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려 했다. 2014년에는 반환 당시 약속했던 “2017년부터 홍콩 시민이 직접 행정장관을 뽑게 해주겠다”던 약속도 철회했다. 우산혁명이 일어난 이유다.
이념 갈등 외에 경제 및 세대 갈등도 심각하다. 기성세대가 젊었을 때 홍콩은 영국이란 든든한 우산 하에서 ‘아시아 4마리 용’으로 불리며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장년층은 대부분 이 혜택을 누렸다. 반면 지금 젊은 세대는 홍콩으로 몰려드는 중국 본토 사람들 때문에 집값만 오르고 일자리가 없다는 불만이 많다.
홍콩 지니계수는 0.537로 ‘폭동이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인 0.5를 넘어섰다. 게다가 홍콩 부동산 가격은 7년째 세계 최고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홍콩 집값의 중위가격은 가계소득의 18배에 달해 세계 406개 주요 도시 중 가장 비싸다.
○2047년 홍콩의 미래는?
홍콩은 지난 100년 간 청나라 영토→영국 식민지→중국령 특별자치구라는 정치사회적 대격변을 겪었다. 2047년에는 일국양제가 끝나고 중국과의 완전 통합도 예정돼 있다.
이로 인한 정체성 문제, 중국과의 갈등, 양극화 심화 등으로 홍콩인들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홍콩 시민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중국에 큰 반감을 지닌 반중파, ‘중국이 홍콩을 어떻게 대해도 상관없다’는 방관파, ‘홍콩과 중국은 하나’라는 친중파다. 세 부류는 엇비슷한 세력을 형성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현안에 대한 입장도 첨예하게 다르다.
람은 최근 “홍콩 시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설사 행정수반에 당선돼도 언제든 사임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과연 그가 이 복잡다단한 홍콩의 현실을 잘 아우를 수 있을까.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