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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의 트렌드 읽기]‘혐오의 감정’이 선거 결과를 바꿀 수 있다

입력 | 2017-03-17 03:00:00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

정치 분야에도 트렌드가 있다. 미디어 정치, 이미지 정치에 이어 최근에는 정치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예능 정치’라는 말도 등장했다. 선거에서 이기려다 보니 정치공학이나 정치 프레임처럼 유권자들의 심리를 유리하게 끌고 오려는 전략적 접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렇다면 우리 시민들은 점점 더 정치인들의 의도에 따라 끌려 다니는 존재일까. 아니면 그들이 온갖 수를 다 써도 꿋꿋하게 내 길을 가는 편일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감성적인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몇 가지 논쟁이나 이슈만으로도 쉽게 독립적인 판단력을 상실할 수 있다. 가령 ‘혐오’ 감성이 그렇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정치적 선택을 할 때 생각보다 감성에 휘말린다고 한다. 코넬대 데이비드 피자로 교수 등의 연구를 보면 ‘손이 더러워서 씻어야겠군’이란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보수적 입장에 선다. 그는 한 그룹의 피실험자들에게 손 위생 관련 표지판 밑에서 정치적 선택에 관한 설문지를 작성하게 했다. 또 다른 그룹은 아무런 표지판이 없는 곳에서 같은 일을 했다. 그 결과 더러움을 연상할 수 있는 표지판 밑의 그룹이 훨씬 보수적 선택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혐오스러운 것에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가진다. 예를 들어 동성애에 대한 질문지를 작성하는 사람들을 모아놓은 방에 좋지 않은 냄새를 슬쩍 뿌려놓는다. 그리고 나중에 그 냄새에 비위가 상했다는 사람과 그렇지 않았다는 사람들의 동성애에 대한 견해를 분석해 보았더니 혐오스러운 냄새를 맡았다는 그룹이 동성애에 대해 더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약 3만 명에 이르는 미국인의 표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더럽거나 징그러운 것에 남들보다 쉽게 ‘싫다, 구역질 난다’라는 혐오 민감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정치적으로는 더 보수에 속했다. 실제로 과거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혐오에 관한 민감도가 높은 사람이 많은 지역에서는 공화당 후보를 이길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를 볼 때 우리는 선거에서 후보 가운데 누가 더 옳고 나은 사람일까라는 판단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에서 혐오라는 감성에 관련한 이슈는 어떤 게 있을까. 북한 김정은의 독재, 사드 문제에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중국인들, 조선족을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 동성애 등의 성소수자나 낙태 문제, 테러를 연상시키는 이슬람교도, 심지어 여성 혐오까지 무척 많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도 혐오의 감정을 부추기기 위해 이들을 더 싫은 존재로 만들려는 정치인과 혐오를 없애기 위해 실제보다 미화하려는 정치인들이 우리의 판단력을 어질러 놓을지도 모른다. 정치가들의 정치공학적 계산이 아니더라도 지지자, 후원자, 반대자들이 의도를 가지고 우리를 자신도 모르게 진보나 보수적 선택을 하도록 하는 감성 자극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갈수록 선거 기간에 후보자들의 싸움을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