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시됐던 전술핵, 트럼프 이후 솔솔 ‘핵 모호성’ 유지로는 北도발 억지에 한계 핵사용 의지 드러내… 비핵화 이끌어내야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전술핵을 배치하면 1991년 남북비핵화공동선언을 파기하는 것이고,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이며, 핵전쟁의 가능성이 증가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 가능성이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먼저 1991년 남북비핵화공동선언은 북한의 핵개발로 인해 사문화된 지 오래다. 우리가 아무리 비핵화공동선언을 준수한다고 해서 우리의 선의에 보답하여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전술핵을 재배치한다고 하여 과연 핵전쟁의 가능성이 증가할까? 한반도에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가져옴으로써 오히려 전쟁과 도발의 가능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
전술핵 재배치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기보다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여 실질적인 비핵화로의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 북한은 비핵화의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 한미 연합 군사연습 중지, 한미동맹 파기, 북-미 평화협정 체결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 어느 것 하나 우리가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이다.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북한 스스로 요구 조건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미국 내에서도 전술핵 배치에 대해 반대하는 이가 많다. ‘핵 없는 세상(nuclear free world)’을 주장했던 오바마 정부 시절 확장억지와 관련된 한미 간 협의에서 미국은 핵무기 문제는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핵무기에 관한 논의를 회피해 왔다. 확장억지와 관련해 미국은 첨단 재래식 무기에 의존한 ‘역외억지(off-shore deterrence)’를 강조하고, 핵무기는 사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억지를 위한 것이므로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극단적인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호하다. 또한 핵무기의 배치와 사용 여부를 모호하게 유지함으로써 상대방을 교란하는 ‘핵 모호성(nuclear ambiguity)’을 유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논리로 대응했다. 이러한 논리는 북한이 핵을 사용하더라도 미국은 핵이 아닌 재래식 무기에 의존한 보복만을 할 것이라는 북한의 오판을 불러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미국의 대(對)한국 안보방위 공약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핵 사용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미군이 가지고 있는 전략폭격기, 첨단 전투기, 핵잠수함 같은 전략 자산의 전개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러한 전략 자산들이 핵탄두를 가지고 있고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북한으로 하여금 확실히 알게 함으로써 대북억지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 우리의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효과적으로 북한의 군사적 모험을 억지할 수 있다.
전술핵 재배치는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기술적 문제도 수반되고 전략·전술의 변화도 요구되며, 재정적 부담도 발생한다. 그런 모든 제약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군사적 모험을 억지하고 비핵화로 나오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 기간 동안 이 대안은 미국 정부에 의해 거부돼 왔다. 연속된 북한의 도발과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는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불가 입장이 바뀌도록 하는 좋은 기회이므로 실기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