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봄을 알리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나물 수확이 끝난 밭과 도로 옆 길가, 돌담 옆 사이사이 조그마한 자투리땅에 피어난 노란 색깔의 유채꽃이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밭에 피어 있는 유채꽃은 파란 바다색과 어울려 더 노란 빛을 띤다.
둘째는 이른 아침 밭으로 향하는 동네 삼촌들의 발걸음이다. 제주도에선 나이 드신 어른을 삼촌이라 부른다. 동네 삼촌들은 겨울농사를 끝내고 다시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제주도는 겨울에도 콜라비, 양배추, 쪽파 등을 경작하느라 바빴지만 봄을 맞는 농부 삼촌의 발걸음은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첫걸음이기에 더욱 부푼 꿈을 안고 있다.
세 번째는 소나무 재선충 방제작업을 하느라 아침부터 들려오는 나무 베는 엔진 톱 소리다. 봄을 맞아 이뤄지는 재선충 방제작업은 벌써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우리 동네에도 수많은 나무가 베어지고, 파쇄된다. 수십, 수백 년을 살았을 소나무가 허무하게 잘려나가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내년 봄에는 이 엔진 톱 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1년 넘도록 손수 짓고 있는 집에도 봄이 왔다. 1년째 동생 집을 같이 지어주는 고마운 형님의 마음에, 시간이 날 때마다 집 짓는 현장에 들러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고 커피 한잔 타 주는 형님들의 손에, 마당에 심으라며 귀한 나무를 거저 주는 형님의 멋쩍은 웃음에, 장비 값만 받고 커다란 동백나무를 심어 주는 선생님의 오래되고 낡은 챙모자에도, 우리 집 진돗개(똘똘이) 새끼들을 분양해가며 그저 1000원짜리 하나를 내미는 앙증맞은 어린아이의 품 안에도 봄은 이미 와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딸아이와 아내가 현장을 방문하는 일이 많아졌다. 얻어 심어놓은 나무에 물을 주고, 예쁘게 자라라고 주문을 걸어주는 딸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예쁘다. 뒤따라오는 강아지에 놀라 달아나는 아이의 발걸음도, 그 아이를 따라가는 강아지의 엉성한 뜀박질도 보는 사람을 미소 짓게 만든다. 제주에서 배운 미싱, 매듭법, 캘리그래피로 공방을 하겠다는 아내를 위해 집 옆에 공방을 만들기로 하고 그 기초를 얹었다. 이 공방이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제주의 이웃들이나 길을 걷던 올레꾼도 함께할 수 있는 사랑방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주의 봄. 우리가 원하는 봄은 노란 유채꽃, 하얀 매화, 따사한 햇빛보다 먼저 사람에게서 온다.
― 조현일
※필자(42)는 서울, 인천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다 2년 전 제주로 이주해 여행 숙박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